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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은 손님처럼

등록일 2022-02-06 19:37 게재일 2022-02-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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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기 칠곡군수

‘재세여려 재관여빈(在世如旅 在官如賓)’이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세상살이는 나그네처럼 하고 관직 생활은 손님처럼 하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문인 성대중은 규장각에서 교서관 교리의 벼슬에 있을 때 이 글을 좌우명으로 삼아 벽에 써 붙여놓고 공직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는 관직을 자신의 특권이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익을 버리고 미래를 내다보며 청렴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돌이켜 보면 필자도 모든 혼과 열정을 군정에 쏟아붓고 칠곡군 최초의 3선 군수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결국 손님처럼 왔다가 오는 7월 후임 군수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손님처럼 떠나야 한다.

개인 백선기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지만, 칠곡군수 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리더의 선택은 조직과 지역의 운명을 좌우하기에 후임 군수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보다 미래를 내다보며 기본과 원칙을 지켜나갔으면 한다.

2011년 취임 당시 칠곡군은 전국 82개 군(郡) 단위 자치단체 중 예산 대비 채무 비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한 해 이자로만 3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심지어 시중 금리보다 훨씬 높은 6% 이상의 고이율 지방채도 떠안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정 불건전단체’로 낙인이 찍혀 군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필자는 일부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눈앞의 인기보다 미래를 내다봤다. 2012년부터 ‘재정건전화 로드맵’을 마련해 채무 청산 작업에 본격적인 속도를 냈다. 채무상환을 위한 재원은 고질 체납세 징수, 낭비성 예산 감축, 행사 경비 절감, 선심성 보조금 관리강화 등을 통해 마련했다.

또 군수 관사를 매각하고 부채상환을 위해 각종 ‘경상경비 10% 절감’을 실천해 매년 8억원의 비용을 아꼈다.

이를 통해 재정 건전성이 향상되자 지역의 명운을 결정할 대형 국·도비 사업을 본격적으로 유치할 수 있었고, 2018년 군비 부담 일반채무를 전액 상환해 국·도비 사업과 코로나19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군의 재정 건전성 확보로 차기 군수의 어깨가 가벼워지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둘째, 포퓰리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에 이어 지방자치단체장들도 경쟁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민수당, 출산장려금, 육아 수당 등 지자체의 현금복지 경쟁은 우려스러울 정도다. 2017년 지자체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53.7%를 기록했으나 지자체가 앞 다퉈 무상복지에 뛰어들면서 지난해에는 48.7%로 50%대를 밑돌았다. 포퓰리즘의 망령에 사로잡힌 현금복지로 인해 재정난이 심화되어 정작 필요한 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기 어렵게 됐다. 차기 군수는 미래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포퓰리즘을 멀리했으면 한다.

셋째, 지도자는 청렴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로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며 청렴하지 못하면 관리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지도자는 본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1년 취임 당시 칠곡군이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인 5등급에 이름이 올라 충격을 받았다. 강력한 자구책을 통해 청렴도가 점진적으로 상승해 현재는 경북도 최상위권인 2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넷째,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과거에는 절차를 무시하고라도 목적 달성을 위해 밀어붙이는 강한 추진력이 주효했다면, 지금은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와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설득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필자는 지역민의 다양성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군민 대통합 위원회를 통해 하나의 목소리로 순화 시켜 계층 간 화합을 이끌어냈다.

끝으로, 군수는 벼슬이 아닌 공복으로 봉사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군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군수를 군민들은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주도하고 민간부문에 일일이 간섭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자율, 경쟁, 책임의 원칙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중시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읽고 군정을 꾸려나가야 한다.

손님은 잠시 머물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난다. 후임 군수는 다음 손님을 생각하며 행정을 펼치는 아름다운 손님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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