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깨어 있는 바다

등록일 2022-01-10 20:20 게재일 2022-01-11 18면
스크랩버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울수록 겨울바다의 빛깔은 깊고 진하다. 멀리서 보면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쉴 새 없이 뒤척거리며 물결이 움직이고 있다. 해변의 모래톱으로 긴 여울 자락을 펼치며 나울거리는 파도는 육지의 안부를 묻는 잔잔한 속삭임 같고, 갯바위에 철썩거리며 흰 포말로 부서지는 너울은 간간이 응축된 힘을 발산시키는 물살의 함성같이 들린다. 혹한의 계절에도 바다는 온갖 생명체와 유기체를 온전하게 품으며 재우고 걸러내고 찰방이고 있다. 은빛 햇살 부서지는 한적한 해변에 갈매기들의 겨울 나들이가 시작됐다. 추위에 떠는듯 깃을 접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먹이라도 발견한 걸까? 시퍼런 물살이 일 때마다 조금씩 깃을 터는 갈매기들, 이윽고 몇 마리가 날아오르자 마치 군무라도 펼치는 듯 연이어 날갯짓하며 끼룩끼룩 퍼덕퍼덕 그들만의 어설픈 외침으로 일제히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비상의 나래를 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갈매기 날갯짓 따라/파랑(波浪)으로 손짓하며/짙푸른 함성인 듯/근육으로 이는 물살/벅차게 용솟음치는 꿈/깨어 있는 자의 삶//자정(自淨)의 먹을 갈아/뭍의 배설물을 삭히며/트인 가슴으로/넘실대는 사유의 자락/수평선/가뭇한 언저리에/각인되는/올곧음’ -拙시조 ‘깨어 있는 바다’전문(1994)

바다는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었다. 탁 트인 전경에 가슴이 절로 시원해졌고 가물가물 수평선이 자꾸만 마음을 꾀는 듯했다. 한없이 너른 품새로 모든 것을 받아주다가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격정의 몸부림은 사람의 성질이나 삶의 양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면서 바다는 언제나 쉼없이 찰랑이고 삭히고 밀어내면서 평상심으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듯했다. 중 2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 가면서 처음 본 동해바다의 설레임과 신기함에, 속내 깊은 바다의 진중함과 유장함이 투영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 인 것 같다.

바다는 늘 깨어 있기에 파도치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고 열려 있기에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고 포용하는 가슴을 열어 바르고 곧은 사유를 일깨우는 것이다. 생각의 물길이 파도로 출렁이고 근육 같은 물살이 일렁이며 꿈을 외치는 것이다. 넘실대는 물의 평정(平靜)이 올곧은 수평선으로 뜨기에 비늘 같은 햇살을 쪼며 갈매기들이 화답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채근하며, 파랑의 몸짓으로 꾸준히 뒤척이고 노력하고 진취해야 하는 것이리라.

지구의 2/3 이상을 뒤덮고 있는 어머니 같은 바다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일깨우지만, 문명의 진화에 수반되는 온갖 해악과 해양 쓰레기는 갈수록 바다를 피폐하고 신음하게 만들고 있다. 바다로부터의 일깨움은 소소한 삶의 편린일 수 있지만, 인류와 미래의 생존과 지속에 직결되는 심대한 영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낮없이 읊조리는 바다의 그침 없는 해조음에 귀 기울이며, 바다 살리기와 탄소중립 실천의 시대적 요구와 역할에 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해보자.

心山書窓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