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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정직 있는 한 ‘죽도시장 전성시대’는 계속됩니다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2-01-02 19:57 게재일 2022-01-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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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69 포항 죽도시장<br/>30년 문어 외길 ‘포항수협 77번 중매인’ 권순찬 씨
권순찬 대표의 새해 희망은 “코로나 바이러스 전성시대는 사라지고, 죽도시장 전성시대가 다시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용선기자 photokdi@kbmaeil.com

시장은 맥박 치는 삶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공간이다.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온 전통·재래시장일수록 더 그렇다. 1969년 무성한 갈대밭 인근에서 노점상들이 시작한 포항 죽도시장의 역사가 53년째 접어들었다. 이제는 동해안 최대 규모로 자리 잡은 죽도시장은 점포 숫자가 2천500여 개를 넘나든다. 거기에 삶을 의탁해온 수천 명 상인의 애환과 눈물과 웃음이 묻어 있는 질박한 사연을 모아 사람들 사이에 숨겨진 ‘생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2022년 시작하는 첫 번째 기획연재다.

/편집자 주

 

사람도 혈색이 좋으면 건강한 것 아닙니까. 얼굴색이 검으면 간이 안 좋고…. 문어도 마찬가지죠. 지나치게 검거나 탁한 빛이 돌면 별롭니다. 빛깔이 선명하고 생생한 움직임을 보이는 문어가 맛있지요. 삶는 시간도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1kg짜리와 10kg짜리 문어가 적절하게 삶아지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문어를 살 때 주인에게 문의하면 크기에 맞는 조리 시간을 알려줍니다. 고민할 것 없이 그냥 물어보세요.

약관(弱冠)에 시작해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오늘까지 죽도시장에서 30년간 잔뼈가 굵은 포항수협 77번 중매인(해맞이수산 대표) 권순찬 씨(51)는 서글서글한 웃음에 소탈한 어법을 가졌다.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어찌 보면 귀여운(?) 인상이다.

성큼성큼 걸어와 악수를 청하며 이야기 나눌 찻집으로 안내하는 권 대표의 앞뒤로 커다란 문어를 삶아 내건 점포들이 즐비했다. 죽도시장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권 대표의 ‘특화 전공’ 역시 문어다.

“시장은 서민들의 울고 웃는 삶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곳 같습니다. 동료 중매인들, 상인들, 손님들과 함께 짧지 않은 세월 기쁨과 슬픔, 빛과 그림자의 시간을 함께 했어요.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람과 긍지도 있지요.”

2년을 이어진 ‘코로나19 사태’의 파도 속에서도 문어를 포함해 한 해 7억~8억 원어치의 해산물을 거래하는 당당한 생활인으로 자리 잡았지만, 권 대표의 시작은 소박했다.

20대 초반.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고 일자리를 찾던 권 대표에게 바다가 지척인 죽도시장이 보였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익숙했던 동해의 해산물을 사고파는 시장.

권 대표가 시작한 일은 죽도시장에서 해산물을 나르는 것이었다. 육체를 사용하는 노동은 인간의 정신을 명료하고 명징하게 해주는 법. 과장과 거짓이 느껴지지 않는 권순찬 씨의 태도는 이미 스무 살 무렵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새벽부터 시장에 나와 문어와 각종 생선을 사고 판매하는 쉽지 않은 일을 하며 낳고 키운 아들이 이제 20대다.

권 대표는 아들에게 성실과 정직을 이야기한다. 삶에서 체화된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니 자식에겐 그보다 귀한 가르침이 없을 듯했다.

 

“좋은 문어 골라서 맛있게 먹는 방법요?”

 

오랜 시간 문어를 구매하고 판매하며 쌓인 노하우가 있을 테니, 독자들을 대신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질문들이다.

“실수하지 않고 좋은 문어를 고르는 방법은 뭡니까?”

“문어는 대부분 숙회로 먹는데 맛있게 삶는 방법이 있나요?”

“동해에서 잡히는 대형 문어를 대왕문어라 부르죠. 얼마나 큰 걸 봤나요?”

말 그대로 ‘문어 전문가’이니 답변에 과시와 허세가 섞였을 법도 하지만 천만에. 돌아온 대답은 상식적이고 간명했다.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사람도 혈색이 좋으면 건강한 것 아닙니까. 얼굴색이 검으면 간이 안 좋고…. 문어도 마찬가지죠. 지나치게 검거나 탁한 빛이 돌면 별롭니다. 빛깔이 선명하고 생생한 움직임을 보이는 문어가 맛있지요.”

문어숙회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인 먹을거리다. 삶는 시간이 짧으면 덜 익어 비리고, 길면 질겨져 비싼 식재료의 역할을 못한다. 얼마나 삶아야 최고의 맛을 지닌 문어를 맛볼 수 있을까? 이 궁금증에 관해 권 대표가 웃음을 섞어 짤막하게 대꾸한다.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1kg짜리와 10kg짜리 문어가 적절하게 삶아지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문어를 살 때 주인에게 문의하면 크기에 맞는 조리 시간을 알려줍니다. 고민할 것 없이 그냥 물어보세요. 그게 편해요.”

정성과 노하우를 담아 삶아낸 문어를 정성스레 포장하는 권순찬 대표.  /이용선기자 photokdi@kbmaeil.com
정성과 노하우를 담아 삶아낸 문어를 정성스레 포장하는 권순찬 대표. /이용선기자 photokdi@kbmaeil.com

문어 삶는 솥에 섞여드는 정성과 30년 노하우

 

사실 직접 바다로 나가 커다란 문어를 잡아본 사람은 드물다. 보통의 사람들은 수산시장 플라스틱 대야에 담긴 조그만 걸 보거나, 삶아서 진열한 걸 보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권 대표는 38kg과 42kg짜리 살아있는 문어를 봤단다.

“문어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어라고 생각하죠? 엄청납니다. 40kg 안팎의 문어가 8개의 다리를 쫙 펴고 물 위에 떠있으면 6인용 텐트만 하죠. 심장 약한 사람이 보면 무서울 정돕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몇몇 나라에선 문어를 흉물로 생각해 먹지 않는다. 뱃사람들이 어렵사리 포획한다고 해도 그냥 버린다.

10여 년 전 기자가 여행한 인도가 그랬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이 ‘죽도시장 스타일’로 잘 익힌 문어숙회를 한 번 맛보게 된다면…. 인도 식탁에서 문어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상상은 언제나 재밌다.

문어를 한자로 쓰면 ‘文魚’다. ‘글월 文’자를 사용하는 것. 1930년대 어떤 시인은 ‘(문어와 낙지는) 미물이지만 그 안에 먹물을 지녔으니 공맹(孔孟·공자와 맹자를 함께 이르는 말)의 법도를 안다’고 썼다.

물론, 문학적 과장이겠으나 아직도 ‘유학(儒學) 존중’의 풍토가 엄연한 영남에선 제사상에 큰 문어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해산물을 놓고 보자면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문어의 가격.

권 대표는 한참을 별러 문어 한 마리를 사러 오는 서민 주부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다. 문어를 삶는 솥에 정성과 30년의 노하우를 더불어 담는다. 자신에게 구입해 간 삶은 문어가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식구들의 행복한 식사시간을 선물할 걸 알기에.

내친김에 문어를 숙회가 아닌 다른 형태로 먹는 방법도 물었다. 역시나 재밌는 대답이 돌아왔다.

“얇게 썬 뒤 채소와 섞어 샐러드에 넣어도 좋고, 다른 해산물과 곁들여 먹어도 잘 어울립니다. 특히 라면을 끓일 때 문어 살과 내장 몇 조각을 넣으면 우스개가 아닌 진짜로 ‘신이 내린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도 좋아하고, 나이 드신 분들도 그 맛을 보시고는 잊지 못하겠다 하더군요.”

 

“죽도시장 전성시대 다시 오길”

 

지금도 진행 중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태풍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막아서고 있다. 포항은 여름도 좋지만 겨울이 더 낭만적이다. 이 시기는 문어와 대게, 과메기와 싱싱한 생선회가 맛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랬기에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11월부터 2월까지 수많은 관광객들이 버스를 전세내거나 자가용을 타고 죽도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2020년 겨울부터 2022년 1월까지 시장의 추위를 녹이던 손님들의 온기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권 대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다시 밝아올 내일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은 언제나 있어왔지요. 살아온 과정이 내내 평탄하거나 순조로웠던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어느 자리에서건 희망을 잃지 않고 시장 사람들과 거친 풍파를 이겨내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 전성시대’는 저만치 사라지고, ‘죽도시장 전성시대’가 다시 열리지 않겠어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파탄 지경에 이른 서민경제를 걱정하는 시절이다. 이는 장밋빛 꿈으로 열려야 할 신년 벽두가 마냥 환하지만은 않은 이유이기도 할 터. 그러나 권 대표의 말처럼 어려운 시절은 유사 이래 언제나 있어왔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아닐지.

“친구들과 모여 앉아 죽도시장의 갖가지 해산물을 가운데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 권 대표. 그런 시간이 다시 돌아와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그의 희망이 머지않은 때 이뤄지길 기자 역시 바란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 권 대표를 봤다.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그의 죽도시장 30년 생활이 그대로 느껴졌다. 앞으로의 30년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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