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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 마을, 덕동 숲

등록일 2021-10-31 19:26 게재일 2021-11-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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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수필가
윤영대수필가

지난주 포항문화원의 경북선비아카데미 12강좌가 끝났다. 격조 높은 강의를 들으며 포항지역의 선비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경북지역은 유학의 발상지이자 중심지로 낙동강을 맥으로 삼아 상·중·하로 구분되어 포항지역은 대구 구미 선산과 더불어 낙중학(洛中學)으로 교육의 맥을 이어온 곳이라, 선비정신이 은은하게 배어있고 자취도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알고 그 정신적 향기를 맡아보고 싶어졌다.

비 온 후 맑은 가을하늘 아래 기계면을 지나 기북면으로 들어가니 과수원엔 탐스런 사과들이 태양을 닮고 있었고 잠시 후 오덕리 덕동숲에 닿았다. 이 숲은 풍수적으로 조성한 수구막이 숲으로 2006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였고 소담스러운 전통마을을 품고 있다. 입구 노송숲에 ‘덕동국민학교 교적비’가 눈에 띈다. 30년 전 폐교했다는 자리에는 전통문화체험관이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코로나로 방문객이 드문 관내를 돌아보며 볼거리느낌 집, 배움나눔 집, 잠자는 집과 다도와 공예체험실 등을 기웃거리다 뒤뜰로 오면 정겨운 장독대가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덕동민속전시관 앞에 주차하고 보니 덕연관(德淵館)은 닫혀있고 노부부가 낙엽을 쓸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이 여주 이씨 후손인 듯해서 인사를 했더니 전시관 주인으로 이 마을의 고문서 등을 보존하고 있다며, 이제는 마을에 맡겼다고 아쉬운 듯 뒤돌아본다. 앞에는 ‘제4호 기록사랑마을’의 커다란 표석이 보이고 덕연구곡 비석도 있다. 삼기(三奇) 구곡(九曲) 팔경(八景)을 메모하여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용계정(龍溪亭)으로 내려갔다. 임진왜란 당시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 선생의 별장으로 이조 말엽 서원철폐에도 용케 화를 면하고 좁은 용계천 바위 벼랑에 서서 맞은편 연어대(鳶魚臺)를 내려다보며 늠름하다. 맑은 개울가 합류대에서 조약돌 하나를 주워 만지작거리며 올라오니 세덕사 터에 수백년 된 와향(臥香)이 세월의 무게를 업고기는 듯한 모습이 신기하다.

조용한 골목길을 올라가면 애은당(愛隱堂) 고택이다. 기왓장을 쌓은 입구로 들어가 봤더니 인적이 없어 ‘ㅁ’자 모양이라는 상류층 고택을 살펴보지 못하고 나와 여연당(與然堂)으로 갔다. 정문부가 사위인 이강에게 양도했다는 가옥이다. 자연석 기단 위 툇마루에 마침 노인이 앉아있기에 현판 글씨가 아름다워 허락을 얻고 찍었다. 바로 옆이 사우정(四友亭) 고택, 정면 7칸 ‘一’자 형의 납도리집 사랑채는 긴 마루에 나란히 앉아 담소했을 네 명의 친구들이 그려지고, 담 붙은 근대한옥의 태고와(太古窩) 마루에 잠시 앉았다가 앞길의 덕계서당으로 갔다. 전통건축 중에 서당이 흔치 않아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곳 강의재(講義齋)에 앉아 시 한 수 읊고 싶은 마음을 안고 강둑 길 지나 와룡암으로 갔더니 넓은 반석 위로 깨끗한 개울물이 계절을 씻고 있었다.

되돌아오는 길, 섬솔밭으로 들어가 연잎이 고요히 들어찬 호산지당 옆 회나무 우물 ‘회정’에 입도 적셔보고, 이 나라에 군자의 덕을 갖춘 진정한 선비가 나와 국가를 이끌기를 염원하며 구령대 앞에 서니 선비들의 삶을 느낀 오늘의 나들이가 마음에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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