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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묻고 또 물어 한 사람의 삶을 재단

이바름기자
등록일 2021-05-25 20:24 게재일 2021-05-2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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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공판 스케치
장내 질서정리·재판 진행까지
법정은 오롯이 판사의 공간
기업대표도 회사원도 무직자도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시간
“피고인, 선처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25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제1호 법정. 형사1단독 최누림 판사가 음주교통사고를 낸 피고인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후 말을 건넸다. 피해자와 합의한 점과 부모를 봉양하고 있는 점 등이 양형에 영향을 미쳤다. 판사의 말과 함께 판결문을 전달받은 남성은 고개를 숙이며 “잘 살겠습니다”고 말한 뒤 법정을 떠났다.


“김OO씨 있습니까? 들어와서 맨 앞 줄에 앉으세요. 뒤에 앉으신 분 이OO씨입니까?”


법정은 오롯이 판사의 공간이다. 그래서 장내 질서도 판사가 정리한다. 재판의 진행도 역시나 판사의 몫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판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곳에서는 오전 9시 30분부터 재판이 시작됐다. 오전타임에만 41건의 공판이 예정돼 있었다. 최 판사가 하나의 사건을 해석하고 판결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3분에서 5분 남짓. 그러나 판사의 언행은 조급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았다.


“검사 측, 공소사실요지 말씀해주세요.”“증거 조사하겠습니다.”“선고하겠습니다.”


형사사건의 법정에서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다. 서류 상으로 사건을 미리 접했지만 법정에서 다시 확인한다. 피고인에게 동종전과가 있는지,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효력을 가지는지, 피해자와 합의했는지 등이다. 단상 위에 앉아있는 판사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엄밀히 말하면 법 앞에서는 기업의 대표도, 회사원도, 무직자도 모두가 그렇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이날 첫 재판에 참석하려고 포항을 찾은 구미지역 한 종합건설사 대표도, 여성이 없는 틈을 타 집에 침입해 자위 행위를 해 잡힌 경기도민도, 집회 과정에서 경찰을 때려 공무집행방해로 재판에 넘겨진 누군가도 피고인의 위치에 서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을 취했다.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뒷문으로 법정에 들어온다. 무고, 사기, 공무집행방해, 공용물건손상 등 다양한 죄명으로 이날 법정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뒷문을 통해 들어왔다가 나갔다. 일상에서 잠시동안만 벗어나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평상복을 입어도, 작업복을 입어도 된다.


옆문을 통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누렇거나, 푸르스름한 옷을 입고서 제복을 입은 교도관들과 함께 법정에 발을 디딘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사기 혐의로 구속, 이날 법정에 나와 법의 심판대 앞에 선 A씨가 그랬다.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라는 판사의 말에 A씨는 억눌러왔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서글프게 울었다. 그리고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판사와 검사, 변호사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전 일정을 마친 후 1시간여 동안의 휴정 이후 다시 오후 1시 40분부터 법정의 문이 열렸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오후에도 수많은 피고인들과 변호인이 재판장을 들락날락했다. 맞은 편에 앉은 검사는 자기 몸을 가리고도 한참이나 남은 공소장에 파묻힌 채로 재판에 임했다. 이날 하루동안 포항지원 제1호법정에서만 59건의 사건이 처리됐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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