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있는 곳에 인간의 욕망이 있고, 욕망이 있는 곳에 돈이 있으며, 돈이 있는 곳에는 그 돈을 부정적으로 탐하려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미술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들의 욕망을 미술에 투영하고 있다. 미술과 권력, 돈과 욕망의 불편한 동침은 미술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 관계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고가의 작품이 반드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작품의 가격이 반드시 작품에 내재된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미술시장은 미술사와는 전혀 다른 자기 논리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명품을 소비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미술시장이 움직인다. 물론 미술시장의 움직임이 훨씬 더 복합적이다.
미술 작품이 상품이 되어 고가로 거래되는 이상 위작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무언가를 욕망하고, 누군가는 그 욕망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위작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경찰이 위작범을 체포해 범죄에 대한 자백까지 확보한 상태였지만 한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거주하며 이름 꽤나 알려진 이 미술가는 어찌된 일인지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 모두가 자신의 창작물이라 주장했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 거짓말은 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작과 관련해 진품 감정의 방법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첨단 장비를 동원한 과학적 분석이 이뤄지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술품 감정은 주로 전문가의 경험이나 직관 혹은 미술 권위자의 명성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 숙련된 전문가의 감식안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 감식에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나 객관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진술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술가의 기백이 느껴진다든지, 필치가 살아 있다든지 하는 진술들은 감성적이고, 시적이며, 은유적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꽤나 운치 있게 들리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진품 감정에 있어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는 것은 작품과 관련된 문서 혹은 기록이다. 작품을 사고 팔며 주고받았던 계약서 혹은 영수증은 작품 소유자의 이력을 추적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소유자를 확인하는 것이 작품 진위여부 판단에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누가 누구로부터 구입해 소유한 것인지를 아는 것은 작품의 출처와 유통 과정을 밝히는데 큰 도움을 주며 그것이 작품의 외적 환경의 신뢰성을 검증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직접적 감정과 소유자 이력 확인은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헌이나 기록으로부터 취득한 정보는 조작 가능성의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의 의미 있는 참고 자료로 활용될 뿐 진품 확증에 대한 증거로 사용되기에 그 결점이 너무나 중대하다.
최근 들어 미술품 감정을 위해 첨단 과학 장비들이 동원된다. 초정밀 광학 현미경으로 캔버스의 조직을 분석하고 작품에 사용된 재료를 채취해 화학성분 등을 밝혀낸다. 그러한 과정에서 육안으로 들어나지 않는 밑그림이 발견되기도 하고 미술가가 처음 계획을 어떻게 수정해 최종 결과물을 얻었는지를 알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접근법은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국내 위작 사건에서도 경험했던 것처럼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위작임을 밝혀내어도 복잡한 얽혀 있는 관계들 때문에 작가 개인이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하면 위작을 위작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창작윤리를 심각하게 의심할 필요가 있다. /미술사학자 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