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등록일 2021-03-14 20:10 게재일 2021-03-15 19면
스크랩버튼
심충택논설위원
심충택논설위원

정부 산하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이 엄청난 이권(利權)을 가진 수많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기타공공기관이 있다. 이들 기관에 소속된 공직자들의 비리는 주로 내부고발, 국민권익위 신문고 등에 의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비리내용이 가볍다고 판단될 때는 자체감사로 종결되지만, 비리규모가 크고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으면 해당 정부부처 감사실이나 감사원에서 감사반이 투입돼 조사를 한다. 그러나 감사주체가 어디든 비리혐의 당사자가 자신의 부정행위를 시인하지 않고, 증거자료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검찰에 수사의뢰를 할 수밖에 없다. 증거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계좌추적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검찰을 통해 법원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LH 임직원들의 수도권 신도시 땅투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출범한 정부합동조사단이 지난주 국토교통부와 LH 임직원 1만4천명을 대상으로 토지거래를 조사한 결과 20명의 투기의심사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민변과 참여연대가 투기의심 현직 LH 직원 13명을 공개했던 것을 포함하면 합조단이 새롭게 밝혀낸 직원은 7명에 불과하다. 청와대도 같은 날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투기의심 거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그야말로 빈수레만 요란했던 셈인데, 국민 대부분은 “우리를 바보로 아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애초 비리수사를 검찰에 맡기지 않고 국토부의 ‘셀프조사’에 의존할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얼마 전 신도시 땅투기 의혹과 관련해 “직원을 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 거래된 시점, 거래된 단위, 땅의 이용실태를 분석한 뒤 매입자금원을 추적해 실소유주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투기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상식적인 수사기법을 얘기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의 말처럼 돈 되는 땅과 돈의 흐름을 즉각 대대적으로 뒤졌다면 투기의심자가 이 숫자 밖에 나올 수가 없다. 이러니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조사에 대해 “지인이나 차명거래는 물론이고 배우자 기록도 조사된 바 없는 ‘무늬만 조사’”(윤희숙 국민의 힘 의원), “부동산 타짜들이 제 이름 갖고 투기하느냐. 셀프조사의 뻔한 엔딩”(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민이 만족하기 어려운 어설픈 대응은 화를 키울 뿐”(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비난을 쏟아내지 않는가.

LH 직원들이 공적(公的) 지위를 이용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중범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청년들과 서민들은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 그런데 국민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직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땅 짚고 헤엄치듯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민심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고 하는데, 정부·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땅투기 발본색원’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충택 시평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