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택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에서 점점 느려지던 버스가
아예 멈춰버리자
의자에 조용히 붙어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자는 자꾸 엉덩이를 들었다 놓고
손가락들은 목과 뒷덜미를 긁고
모가지들은 아무리 기웃거려도 움직일 생각 없는 창밖을
연신 두리번거린다
꿈쩍도 하지 않는 버스를 움직여보려는 듯
발들이 동동 구른다
땅바닥에 굳게 붙박인 나무와 건물이
계속 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 모든 게 핸드폰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입들은 핸드폰에게 야단을 치고 짜증을 퍼붓는다
속도의 단맛에 중독된 유리창이
수전증처럼 덜덜 떤다
엔진은 곧 폭발할 듯 으르렁거리지만
근질근질한 바퀴는 터질 듯한 공기를 꾹 누르고 있다
고장 난 버스 속에서 벌어지는 재미난 풍경 하나를 본다. 시인은 현대인들의 중독에 대한 금단증상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속도에 중독된 인간의 움직임이란 결국 무정물인 버스라는 기계의 움직임과 같아졌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음을 본다. 시간을 주체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시간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현대인들의 서글픈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