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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이 즐거우려면

등록일 2019-01-31 19:02 게재일 2019-02-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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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통해 높은 인격에 도달한 스님 한 분이 있습니다. 사심과 물욕 없는 고결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분 소유는 딱 하나. 난초였지요. 소박한 거처에 생명이라고는 자신과 난초뿐, 온 정성 다해 돌봅니다. 여름이면 그늘을 찾아 부지런히 옮겨 주고 겨울에는 떨면서도 실내 온도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난초들은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과 연둣빛 꽃을 피워 스님을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상 청청했습니다. 다래헌을 찾은 손님들은 한결같이 난을 보고 좋아했지요.

여름 날 잠시 외출한 스님. 눈부신 햇볕이 쏟아져 내리고 개울물의 소리와 숲의 매미들이 목청을 한없이 돋우는 순간 깨닫습니다. 난초를 뜰에 내 놓은 채 그냥 외출해 버렸다는 것을.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지고, 난초가 어른거려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만남도 허둥지둥 마치고 급히 돌아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난초 잎은 축 늘어져 있습니다. 급히 샘물을 길어 축여주니 겨우 고개를 들었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날 밤. 스님은 깨닫습니다. 집착이 괴로움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난초에 집착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결심하지요. 이 집착에서 벗어나기로. 산방에 올라온 친구에게 이 난초를 맡깁니다. 횡재에 친구 얼굴이 환해집니다. 스님 마음도 환하게 밝아옵니다. 아쉬움 보다 해방감을 느낍니다. ‘무소유’로 잘 알려진 법정 스님 일화입니다. 스님은 이 사건 이후 하루에 한 가지 자신의 소유를 버리겠노라 다짐합니다.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는 사사키 후미오 씨는 1년 동안 자신의 소유물 95%를 처분합니다. 11년 정든 집을 팔고 6평 조그만 원룸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삿짐을 싸는 데 30분 걸렸다고 하죠. “물건이 줄어드는 것만큼 마음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어요. 소유물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책 읽기도 글쓰기도 훨씬 더 많은 시간 할애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신기한 일입니다. 이제 이삿짐 꾸리는 시간을 15분으로 줄이는 게 제 목표입니다.”

끊임없는 덧셈만이 삶의 지름길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과잉 소비 조장 풍조에 속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을 일절 소유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소박한 행복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은 반가운 현상입니다. 소풍은 두 손이 가벼워야 행복합니다. 인생 소풍이 진정 아름답기 위해 올해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대와 함께 고민하는 날 많아지기를! /인문학36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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