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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종군화가단

등록일 2018-11-22 20:43 게재일 2018-11-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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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이 정전 65년만에 휴전이 아닌 종전을 선언하기 위한 노력들이 나라 안팎에서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불법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남·북한 민간인과 유엔군, 중공군 등 600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던 참혹한 전쟁으로 끝이 났다. 3년간 진행됐던 전쟁에서 인적 피해뿐만 아니라 남·북경제와 사회 전반적인 산업의 커다란 손실을 초래했던 결과를 낳았으며 세계 전쟁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며 36년간 지속됐던 식민정책을 종결시키고 국제정국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제2의 건국을 위해 노력했던 국민들은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아직까지 남북 이산의 아픔에 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남북의 이념적 갈등에서 시작된 한국전쟁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들만큼이나 예술계 또한 종군화가와 종군작가, 예술단 등 여러 단체와 무대의 결성을 통해 전쟁 승리를 위한 노력을 함께 펼쳤다. 하지만 한국미술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종군화가들과 미술대에 대한 정확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아직까지 진행되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안겨주고 있다.

해방공간에서 새로운 선진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을 펼쳤던 예술인들은 백척간두에 놓인 조국을 위해 자신의 희생과 위협을 무릅쓰고 구국정신에 입각한 종군과 선전활동을 이어 나갔다. 이들의 종군 활동은 국방부 산하 ‘종군 화가단’과 ‘미술대’, ‘문총 구국대’의 구분없이 고귀한 희생으로 이어졌으며, 당시 제작된 수많은 그림들은 전쟁의 실상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현재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 중인 ‘김우조, 백태호, 그리고 격동기의 예술가’ 전시는 1950년대 대구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종군화가들의 종군활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한국전쟁 중 대구는 한시적이었지만 임시수도와 피난지로서 우리나라의 주요 작가들이 삶을 영위했던 터전이었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미술을 비롯해 문학과 음악 등 모든 분야에서 활발한 문예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오늘의 날 대구 문화를 지탱시키는 토양이 되었다.

박봉수, 백락종, 정점식, 전선택, 김우조, 백태호, 서석규, 이경희, 추연근, 정준용, 박광호를 비롯한 대구화가들의 종군 활동과 윤중식, 박성환, 박한석, 한묵, 박고석, 최영림, 장리석, 이중섭, 한묵, 정규, 이수억, 이상범 등 월남화가들의 작품 활동은 서동진, 박명조, 주경, 서병기, 배명학 등 지역 중견화가들과의 교류로 이어졌다. 급변하는 전시상황에서도 예술이 갖는 진정한 가치와 창작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생계를 위해 창작활동은 잠시 접어두고, 노점상과 도자기공장 노동자 등 다양한 일자리로 굶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한결같은 창작에 대한 열정은 종군 화가단 활동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의 활동은 생계와 종군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지는 전장에서 총 대신 펜과 붓으로 전투장면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은 화가에서부터 선무활동을 통해 국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꾀하기 위한 문예활동을 담당했던 구국대까지 온몸으로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제작된 작품들은 분명 1950년대 한국시각미술을 대표하는 도상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연구와 조사는 작가별 작품화풍 연구에서 벗어나 더 이상 망실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해야 하는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판단된다. 이제 한국전쟁이 발발 한지도 7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그동안 망각 속에 잊혀져 있던 종군화가들의 자료수집과 연구가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유가족들의 관련 증언과 자료발굴도 함께 진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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