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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라도

등록일 2018-11-21 20:52 게재일 2018-11-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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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시인 산자연중학교·교사
▲ 이주형 시인 산자연중학교·교사

“선생님, 다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자의 전화였다. 제자는 올해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再修)를 하였다. “아직 점수도 안 나왔는데 좀 더 천천히 기다려 보자!” “가채점을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탐구영역에서 몇 개 틀렸어요. 정말 탐구 능력은 자신 있었는데, 한 개만 더 맞췄으면 됐는데. 한 문제 때문에 또다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필자 또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대학보다는 학과를 생각하고 지원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학생의 상심한 마음을 더 다치게 하는 것같아 꾹 참았다.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맞아야하는 학생들, 그들에게 학과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필자는 너무 잘 안다. 오로지 그 대학만을 위해 12년에 1년 더, 아니 그보다 몇 년을 더 준비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수험생들, 그들에게 과연 이 나라의 대학은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청년 실업이 최고라고 하지만, 우리의 예비 청년들은 자신의 특성보다는 점수에 따라 실업 사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수능이 끝난 지난 주 언론들은 논술 고사를 치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수험생들의 모습을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논술고사를 치르고 나오는 학생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물밀듯이 밀려나오는 모습은 마치 부정한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오던 대학생들의 모습 같았다.

당장 지금에서야 합격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지만, 필자는 저 많은 청춘들이 대학 입학 후 겪게 될 혼란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대학 입학을 위해 모든 힘을 다 빼앗긴 우리의 청춘들! 과연 그들에게 공부를 더 할 기력이 남아 있기나 할까? 상아탑이 무너진 현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예비 대학생들에게 어떤 캠퍼스의 꿈을 그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도 알아요, 대학 별 거 없다는 거.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처럼 잘 해요.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거라는 걸요. 그래도 선생님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그런데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또 새롭게 시작할 겁니다. 선생님 1년만 더 기다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탐구영역 한 문제 때문에 삼수(三修)를 생각한다는 제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교육청에서는 “학년말 내실있는 학사운영 실시”라는 공문을 이 맘 때 학교로 뿌린다. 주 내용은 “다양한 자기개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학사운영 내실화”이다. 그리고 다음과같이 세부 프로그램까지 제시하고 있다. “축제, 꿈끼대회, 동아리 등의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 운영”, “졸업학년도 학생 대상 전환기 진로교육, 독서교육 등”, “학교 특색에 맞게 자율적인 꿈끼탐색 주간 운영” 말이야 다 맞는 말이지만 과연 지금의 교육현실에서 가능할까. 학교 정기고사 공부도 학원에서 하는데, 수능까지 끝난 판에 학교 수업이 귀에 들어올까.

대한민국의 11월 말과 12월 학교의 모습이 어떤지는 이 나라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다 안다. 1학년과 2학년은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자습을 하고, 수능과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낸 고등학교와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는 교사의 수업대신 영화소리만 가득하다는 것을! 이미 학교에 대한 신뢰를 깨질 대로 깨진 학생들에게 유종의 미를 말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럴 바에야 지금부터라도 1·2학년과 3학년의 학사 일정을 달리하는 학사 이원화 제도를 운영하면 어떨까?

책임도 지지 못할 학생들을 괜히 학교에 모아놓고 학교에 대한 불신만 높이지 말고 말이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청소년 창업교육을 해보면 어떨까? 그런데 학년말 학사업무로 바쁜 교사들이, 아니 자기 퇴근 시간밖에 모르는 교사들이 과연 창업교육을? 정말 답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학교교육을 포기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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