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모호크족은 9월을 “아주 기분 좋은 달”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인터넷에 물었지만 결과를 찾지 못했다.
말은 마음에서 온다고 할 때 필자는 모호크족이 너무도 부러웠다. 말이란 것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오랜 지지를 얻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호크족의 9월 모습이 어떤지 필자는 너무 궁금하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9월을 어떻게 부를까? 검색창에서는 ‘열매달’을 이야기해주었다. 혹시나 더 있을까 해서 찾아보았지만 시간 낭비였다. 우리나라 사람을 두고 예부터 ‘풍유와 멋’을 즐기는 민족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옛 말이다.
지금도 ‘풍유와 멋’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풍유와 멋이 죽은 사회를 살다보니 지금 사회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사회로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 정부는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국민을 자신들의 추종세력으로 만들기 위한 달콤한 유혹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국민들 중에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숯불 위에 고기만 올리면 그것이 최고의 여가 문화라고 보고 배운 우리에게 과연 ‘저녁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최근 들어 전통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절이다. 추석 또한 마찬가지다. 추석에 대한 느낌은 한 해 한 해 다르다. 명절의 가장 큰 의미는 가족이다.
그런데 인구절벽 시대에 가족 간의 정(情)도 절벽 앞에 서 있거나, 일부는 이미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니 추석도 예전같을 리가 없다. 이러다가 우리의 추석을 비롯한 명절들도 영원히 사라지지나 않을지?
예전을 생각해보면 추석이 있는 우리의 9월도 분명 “아주 기분 좋은 달”이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생각만 해도 힘이 되는 고향이 있었고, 그 고향에서 에너지를 보충받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래서 명절 날 고향에 가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추억도 없는 사람들에게 추석은 어쩌면 거추장스러운 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 대신 외국 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몰리고 있다.
명절 연휴 기간 중 외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여행객 숫자는 매년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언론들은 명절 귀성길의 도로 정체 대신 북새통을 이루는 공항의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이 내보내고 있다.
출국을 위한 긴 줄에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의 여행객도 많다. 명절의 바뀐 풍속도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변화 속에서도 그 정신만은 변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당연(當然)이 흔들리는 순간 사회는 혼돈(混沌)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하지만 사회 여러 분야에서 당연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북쪽과의 관계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당연이 몹시 흔들리는 곳 중 또 다른 곳이 교육계이다. 정치 낙하산 교육부 장관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고교 무상 교육과 같은 정치 이데올로기를 말하기 바쁘다. 의미 없는 일인지는 알지만 정치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교육 관계자들에게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교육부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자유학기제 등 뭔가를 한다고 야단이지만 학부모들은 제발 학교에서 아무것도 안 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빨리 끝내주면 애들이 집에서 좀 더 쉬었다가 학원에 가면 되는데, 왜 굳이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 아이들을 학교에 잡아 두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최대한 빨리 끝내주면 정말 고마울 텐데 말이에요.”
한가위 큰 보름달도 외면하고 있는 이 나라 미래가 너무도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