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에 송년회, 신년회 모임이 이어지면서 주변에서 건배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며칠 전 저녁시간에 약속이 있어 어느 식당에 갔더니 우리 말고도 다른 방에 몇 팀이 와 있었고,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서 건배사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방에서는 건배사를 돌아가면서 순서대로 하는 듯 계속해서 군대의 기합소리를 연상케 하는 짧고 강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냥 `위하여!` 하는 소리는 들어줄 만한데 이 소리를 세 번이나 붙여서 하는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는 영 거북했다. 다른 방의 손님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자기들 전용 식당이라면 모를까 방마다 다른 손님이 있는 상황에서 일사불란함과 세를 과시하는 듯한 건배사는 교양인이 취할 태도가 아닌 듯해서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씁쓸했다.
인류가 술로 건배를 시작한 것은 2천 년도 더 된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다. 고대 그리스 철인(哲人)들은 토론에 앞서 술을 주변에 뿌린 뒤 술을 나눠마셨다. 마시기 전에 주신(酒神)에게 바치는 예로 술잔을 높이 들고 주문을 외웠다 하는데, 이게 건배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도 있다. 옛날엔 적을 제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술에 독을 넣어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권한 술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인이 먼저 한 모금 마신 후, 손님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를 제의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건배사 풍습은 2000년대 들어와 일반화된 것이다. 그 전에는 술자리에서 건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마실 때 앞사람이나 옆사람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작(對酌)의 방식으로 했기 때문이다. 건배를 하더라도 그냥 술잔만 부딪쳤지, 건배사를 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21세기에 건배사 풍습이 빠르게 퍼진 것은 회식문화의 확산과 관련이 깊다.
처음 도입된 건배사는 단순한 `위하여`였다. 누가 가장 먼저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술자리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건배사는 `위하여` 이다. 우리는 앞에 기원의 의미를 붙여 `위하여`라고 합창하면서 조직원들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북돋우는 한편 모임에 오락성을 더하게 되었다. 건강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조직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끝도 없이 `위하여` 는 계속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단순히 `위하여`로는 뭔가 부족했던 것 같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를 힘차고 절도 있게 반복하는가 하면, 동작을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위`에는 술잔을 위로 들고, `하`에는 아래로 내리고, `여`에는 입에 갖다 대는(`여`는 경상도 방언에서 `넣어`의 뜻) 방식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당신-멋져`, `나이야-가라`처럼 건배 제의자와 좌중(座中)의 역할을 나눠 하는 방식도 있고, `드숑-마숑((드세요-마셔요)`이나 `소취하-당취평(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당신께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처럼 우리말을 불어나 중국어처럼 꾸민 재치 있는 건배사도 있다.
기발한 건배사 한 마디는 딱딱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기발함이 지나쳐 듣기가 민망한 건배사로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당나발(당신과 나의 발전을 위하여)`이나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같은 경우다. 뜻이야 어떻든 어감이 거북살스럽기 때문이다. 성희롱의 소지가 있는 건배사를 내뱉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대인에게 회식이나 술자리는 사흘들이 있는, 거의 일상사나 다름없다. 그 자리에서 하는 건배도 필수 의식처럼 돼 있다. 그러나 좋은 자리, 즐거운 분위기를 위해서는 건배사도 격이 있어야 한다. 거창한 건배사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함께 자리한 사람이 들어서 거북하지 않으면서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매너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남을 위해서 온 몸을 던지며 살기는 어려워도 남을 조금 배려하면서 살아 갈 수는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