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외고 입학 설명회를 다녀왔는데 우리 학교는 외고를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무거운 표정만큼이나 무거운 톤으로 학부모님이 말씀하셨다. 필자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설명회에서 영어 등급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던데, 우리 학교와 같은 소규모 학교에서는 학생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등급이 안 나오잖아요. 지금 외고 입시제도는 소규모 학교 학생들은 아예 지원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아요. 세상에 이런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제도가 어디 있나요. 이럴 거면 외고는 정말 없어지는게 맞는 것 같아요. 학생들의 특성은 하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영어 점수 하나로만 뽑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소규모 학교 학생들에게는 지원의 의미조차 없는 외고 입시, 그 실체를 알겠어요. 이제 정부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하겠어요.”
가을 들녘의 분주함이 적폐 국감으로 인해 극도의 피로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그나마 위로하는 요즘이다. 만약 욕심만 버린다면, 그리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결실의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그런데 이건 언제까지나 가정(假定)에 불과하다. 겸허한 자연이라면 모르겠지만, 오만한 인간에겐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결실의 계절을 맞은 자연과 함께 중고등학교도 결실 시즌을 맞았다. 그런데 자연의 결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을 대변해주는 말이 입시 지옥이다. 입시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줄 세우기 식 점수로 선발하는 입시는 지옥일 수밖에 없다.
어느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저 드디어 꿈이 생겼어요. 저 이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요.” 물론 성적으로만 보면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다. 하지만 학생이 갖고 있는 능력을 본다면 학생은 그 학교에 합격하고도 남을 학생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학생이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가고 싶은 학교가 있으면 처음부터 열심히 하지!” 필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열심히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점수 때문에 갈 수 없는 것이 입시 교육에 올인하는 이 나라 교육 현실이다. 학령기 인구 절벽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나라 입시 문턱은 높다.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점수뿐이다. 현대인들을 흔히 숫자의 노예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한창 꿈 많고 행복해야 할 학창시절부터 숫자에 짓밟힌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다고 숫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 정부 출범 초부터 전국을 시끄럽게 한 외국어고등학교! 정부와 일부 시도교육청의 소통 없는 외국어고등학교 폐지에 수월성 교육이 아니라 다양성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반대했던 필자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외고 입시 요강을 분석하면서 필자는 필자의 생각을 더 굳혀 가고 있다. 외국어고등학교 1차 전형 자료는 오로지 영어 성적 하나다. 2학년 성적은 그나마 성취도를 본다지만, 3학년 성적은 생뚱맞게 등급을 본다. 결국 3학년 영어 석차 하나로 학생을 뽑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2차에서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을 본다지만, 점수로 걸러진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가능성을 보일 기회조차 없다. 국회 앞에는 외고 폐지를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교육감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고교 입시 경쟁, 사교육 주범인 자사고·외고 등 특권학교 즉각 폐지하라.” 이 말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 교과 등급 확인서` 하나만 놓고 보면 외고는 입시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외국어고등학교는 다양성 교육이라는 교육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 전형 방법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그리고 소규모 학교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영어 등급제`를 보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