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여행이다. 몸으로 한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나아간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보행자나 순례자처럼 온몸으로 책을 읽고 책 세상의 풍경과 마주하라고 한다. 급하게 기념사진을 찍고 지나치는 관광객처럼 텍스트를 접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클릭과 터치로 가볍게 화면을 넘겨버리는 디지털 세계에서 독서문화는 변질되었고 위축되고 있다. 디지털 기기로 글을 읽다보면 스크롤을 내려가며 대충 건너뛰며 흘낏 내용을 살펴보는 방식에 익숙해지게 된다.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스마트폰 사용자는 4천만명으로 전세계 1위라고 한다. 88%의 인구가 손 안에 인터넷인 스마트폰에 길들여지고 있다. LTE급 신속함과 실시간 검색 기능에 노출되면서 종이 책을 펼쳐보거나 잠시 멈춰 사색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민독서실태 조사를 보더라도 성인 3명 중 1명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서율이 저하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업과 취업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를 앗아가는 주범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스마트폰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전에 독서에 투자하던 시간과 노력이 감소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지적한 것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에 종속되면서 우리의 뇌구조가 바뀌고 있고 깊게 사고하는 능력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비판적인 사고와 공감하는 능력, 창의적인 생각이 책읽기를 통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또한 개인의 진정한 자유는 깊은 사유를 거친 지혜를 통해 자기답게 중심을 잡을 때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좀 더 나아지려면 책 읽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책 읽기는 건강한 시민성의 전제조건이다. 독서가 취미가 아니라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는 삶은 날마다 성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바탕이다. 함께 모여 좋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으로 이어지는 자리는 충만한 내적 경험을 제공한다. 텍스트를 보다 깊게 넓게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대로 읽고 올바로 행하는 배움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성찰과 소통이 살아 있는 행복한 공동체가 탄생되는 것이다.
“….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 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 뭐라곤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 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1968년 신동엽 시인이 발표한 `산문시1`의 내용처럼 노동의 현장에서나 일상 속에서 인문의 향기가 넘치는 세상은 책읽기의 습관에서 비롯된 사회 혁명이다. 시인의 바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지금의 현실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책읽기를 통한 프락시스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만이 아니라 리더에게 있어 독서는 더욱 중요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 타임스와 했던 인터뷰에서 “매일 취침 전 한 시간씩 책을 읽었다. 독서가 8년 동안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던 말은 책읽기에서 얻은 중용의 지혜가 책임감 있게 국정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건강한 시민의식과 리더십의 요체는 책 읽기에서 만들어진다. 포도의 맛을 음미하듯 텍스트의 구절을 곱씹으며 읽고 사색하는 독서 습관은 우리 자신 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거듭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묻는다. 당신의 오늘은 책과 함께 하는 하루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