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인간에게 있어야 할 것 가운데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생각의 힘이 아닐까 한다.
생각이라는 차원에서 줄곧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해 왔고,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고, 파스칼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고, 로뎅은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라는 존재를 좌표·관계 속에 두면 생각의 성격도 정해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그런 태도를 지니면,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보이게 되고 생각도 하게 된다.
생각…. 얼마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오레지나무용단의 정기공연 `달구벌 동동(同動)`이 떠오른다.
이 무용공연은 탄탄한 철학적 사유에 기반을 두고 기획된 공연인 만큼 관객들에게 주는 울림도 만만치 않았다. `달구벌 동동(同動)`은 달구벌(대구)의 긍정 아이콘으로서 희망과 기원의 상징이 되도록 기회를 제공하며 헬조선이 아닌 다함께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동동(同動)의 동기를 부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막이 오르고 대구가톨릭대학교 무용학과에 재직 중인 오레지나 교수가 나와서 안무의도와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기획 의도가 더욱 선명하게 전해진다. 오 교수는 후기 산업사회의 과잉 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풍요로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풍요가 폭력이 되어 우리 사회를 공격하고 있는 피로사회임을 역설한다.
오 교수는 또한 과잉 생산과 과잉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를 붕괴시켜 개인 중심의 무연사회가 되는,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꿈, 희망 등 삶의 기반 자체를 포기하는 칠포세대가 되는 불통의 시대를 불편해 한다.
오 교수는 현대사회를 성찰하는 사회철학인 피로사회와 무연사회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동동(同動)을 제시하고 있다. 동동(同動)에서 동(同)은 `한가지, 서로 같게 하다, 같게, 함께, 다같이`라는 뜻을, 동(動)은 `움직이다, 살다, 살아나다, 변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결국 `달구벌 동동`은 `다함께 움직여 변하고 살자`라고 한다. `혼자`가 아닌 `다함께` 만드는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는 기획 의도는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생각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이 공연은 더욱 갈채를 받았던 것 같다.
공연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에서는 달구벌의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천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살아온 대구 시민들과 대한민국 국민들, 오늘의 시각에서 어제와 오늘을 바라보는 철학적 성찰을 볼 수 있다. 2장에서는 무한경쟁 속에서 파편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다양한 이미지와 역동적 춤사위로 볼 수 있다. 3장에서는 솟대의 이미지를 활용해서 갓바위 정령, 비슬산 정령, 측백숲 정령들 등과 함께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현대사회가 폐기한 전통들이 부활하는 힘을 볼 수 있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4장에서는 피로사회와 무연사회를 넘어서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장이 된다.
공연의 끝부분이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구성은 철학의 이론이 현실에서 실천으로 바뀌는 역할을 하며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공연을 관람했는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멜로드라마를 시청했는지 착각이 생길 정도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드는 솜씨 또한 오 교수의 장점인 것 같다.
무용공연은 음악, 의상, 조명을 바탕으로 몸짓과 표정이 만들어내는 선들의 움직임이 관객들을 감동으로 이끄는 장르의 예술이다. 거기다 무용공연이 철학을 만나면 생각하는 관객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바람직한 공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