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어떤 때는 나무그늘에 숨어서, 성주가 잠을 깨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성주는 그림은 그리지 않고 자기만 따라다니는 환쟁이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화가는 담담하기만 했다. 어느 날 화가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우두머리 신하가 불쑥 찾아와서 심문을 하듯 훈계를 해도 화가는 흔들리지 않았다.
관찰을 한 지 이레 째 되는 날, 그의 머릿속에는 성주의 모습을 수 천 조각으로 나눌 수도 있고, 다시 결합할 수도 있고,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할 수도 있고, 축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훤하게 조각 되어 있었다. 붓을 들기 시작하자 숙식을 잊은 채 몰입하여 그림을 그렸다.
화가는 두루마리에 완성된 영정을 성주 앞에서 펼쳤다. 그림이 서서히 나타나자 성주는 노발대발하여 당장 치우라고 고함을 질렀다. 끝까지 펼쳐진 그림 속에는 터질듯 한 볼, 뚱뚱한 몸집, 두껍고도 큰 입, 어느 부분이든 실물과 똑 같았다. 더구나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까지도 성주 그 자체였다. 심술과 탐욕덩어리가 그대로 그림 속에 녹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하들은 완벽한 성주의 모습임을 알면서도 성주님을 모독했다고 야단을 치고, 화가를 감옥에 가두었다.
다음 날, 성주는 다른 사람을 불러와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는 닷새 만에 아주 인자하고 후덕해 보이는, 흡사 부처님의 온화한 모습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성주는 기뻐서 신하들과 잔치를 베풀었고, 갇혀 있던 화가는 형장으로 끌려 갔다. 혼신을 다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그 사람의 체취까지 그림으로 표현한, 진정한 화가는 형장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조정래의 `어떤 솔거의 죽음` 줄거리이다.
화가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오만한 성주 뿐 아니다. 그 성주에게 비굴했던 신하들과 또 다른 화가였다. 양심을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 신하들이 성주의 눈을 멀게 했다. 진실 된 신하가 위대한 성주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훌륭한 성주가 참된 신하를 만들기도 하여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덕을 베풀어 만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성주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지혜로운 신하는 없었다. 권력 앞에 굽실거리는 비굴한 신하들만 가득했다.
요즈음 신문 펼치기가 두렵다.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기 힘든 정보들이 난무한다. 이런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다. 혼란스럽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국내외적인 정치, 경제, 문화, 교육…어느 분야에도 서광이 밝지 못하다. 항간에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말도 떠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또한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는 사회, 진실과 정당함이 인정되는 사회,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지켜주는 사회, 그리하여 국민이 국가를 믿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가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묵묵히 진리와 진실만을 추구하다가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또 다른 `어떤 솔거`가 없는 세상이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