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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는 담합으로 오를 수 있을까?

등록일 2016-10-10 02:01 게재일 2016-10-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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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주<br /><br />한동대 교수·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학부
▲ 김학주 한동대 교수·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학부

사우디와 이란이 마침내 손을 잡았다. 곤궁한 살림은 원수도 화해를 시켰다. 사우디의 재정 적자는 GDP의 15%에 육박한다. 석유 판매 외 자국 내 부가가치 할만한 산업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유가 하락은 치명적이다. 어쩌면 미국, 유럽, 일본이 세계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집단적으로 돈을 풀었고, 이로 인한 인플레 압력을 삭감하기 위해 이들 석유자원 보유국들이 희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참지 못하겠다는 몸짓이다.

이란은 경제적 제재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 동안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석유 증산이 절실하다. 그런 이란을 설득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변화이다. 그러나 유가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들은 너무 많다. 그 가운데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첫째, 러시아 유전의 수익성이 시장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정부가 그 이익을 대부분 세금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것 뿐이다. 러시아 유전은 전통식 설비인데 이들은 채굴 인프라 설치 시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그 후 운영비(operating cost)는 적게 소요된다. 그 결과 배럴당 20달러 밑에서도 수익성을 보이는 유전이 허다하다. 2014년 이후 유가가 반 토막난 상황에서 북미, 남미, 심지어 중동까지 산유능력이 줄었지만 러시아는 계속 늘렸다. 견딜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증설 추세는 적어도 2020년까지 계속된다.

둘째, 북미 쉐일(shale) 유전의 원가 구조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쉐브론(Chevron)은 “북미에서 유가가 배럴당 40불 수준에 있다면 수익성 있는 유전(well)을 1천300개 정도 팔 수 있다. 그런데 배럴당 50불로 올라가면 4천개로 증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발파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손익분기 유가가 낮아지고 있다. 이는 분명히 유가상승을 제한할 것이다.

셋째, 자율주행차 시대가 의외로 빨리 도래할 수도 있다. 자율주행차는 석유소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고, 심지어는 석유 대신 전기로 구동될 공산이 크다. 자율주행 승용차의 경우 보행자의 안전과 관련된 규제를 마련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볼보(Volvo)는 광산에서 사용하는 자율주행트럭을 개발해 시장에 투입했다. 어차피 사람이 드문 작업환경이므로 규제도 덜 심할 것이다.

또 트럭을 운영하는 사업자 입장에서 가장 큰 비용인 인건비와 유류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율주행차는 서로 교신하며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차 간격을 최소화할 수 있어 교통체증도 없고, 브레이크도 덜 밟을 수 있다. 그 만큼 연비가 개선된다. 또 바람의 저항도 앞차가 막아줄 수 있어 연비개선에 도움이 된다.

이런 추세가 석유를 정제해서 파는 정유업계에게는 불운한 이야기지만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 석유화학 원료(feedstock)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가솔린, 디젤 대신 전기로 달릴수록 정유시설은 수요 부족으로 인해 공급 과잉이 심화될 것이며 여기서 함께 생산되는 나프타(naphtha) 가격도 폭락할 것이다. 한국의 석유화학 설비가 대부분 나프타 크래커(naphtha cracker)들이므로 원료 가격 하락의 수혜를 볼 수 있다.

둘째, 철강제품 수요가 석유화학 산업으로 넘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연비규제가 심해짐에 따라 차량경량화가 가속화 되며 철강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 자동차 경량화 소재로 채택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내열성이 약했기 때문인데 전기차는 가솔린, 디젤차처럼 불을 지르며 달리지 않기 때문에 플라스틱의 적용범위가 확대될 것이다.

반면 북미 쉐일가스를 쪼개 화학제품을 만드는 설비(ethane cracker)들이 2017년말부터 대거 유입될 것이다. 이것이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커다란 위협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기회가 이런 위협을 얼마나 상쇄할 수 있을지 시장은 기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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