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 조교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좌절감을 느끼도록 갑질을 하는 교수, 부하 검사를 자살에 이르게 한 부장검사, 백화점 여직원의 뺨을 때리고 주차장 아르바이트생 무릎을 꿇리는 고객, 아파트 경비원을 `종놈` 취급하는 입주민…. 가히 갑질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처에 널린 것이 갑질의 행태다.
하기야 쥐꼬리만 한 권력만 있어도 휘두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갑질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해진 것만은 아닐 터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갑질의 피해자 역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진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모진 시어머니가 되고, 폭력을 대물림하는 가정이나 집단이 그러하듯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낳고 조장하는 풍토를 만들기도 한다.
갑질을 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공감능력의 부족이다.
남의 사정과 고통, 감정 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남을 괴롭히는 짓을 예사로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가 심해지면 가학증(Sadistics)이나 사이코패스(psycho-path)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요즘 들어 그런 현상이 부쩍 늘어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여러 형제들과 부대끼고 동무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서 전자오락에나 몰두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재계나 학계, 법조계의 소위 지도급 인사들이 오히려 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경쟁과 성취에만 골몰하느라 공감능력을 함양할 기회를 갖지 못한 까닭일 것이고..
전에는 사람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주로 지능지수(IQ)였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감성지수(EQ)와 도덕지수(MQ)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머리만 좋은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부와 권세와 명예의 공든 탑이 공감능력과 도덕성의 부족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패가망신 하는 예를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시대에 공감능력의 함양이 아이들 교육에 제대로 반영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공감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남의 아픔을 이해할 것이며 굶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알겠는가. 자기 이부자리도 정돈하지 않는 아이가 자식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경험에는 직접경험만 있는 게 아니다.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도 있고 봉사활동을 등을 통해서 어렵고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문학작품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들어있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국민소득이 올라간다고 선진국이 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갈수록 범죄와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경제력이나 국방력에 못지않게 국민들 각자의 공감능력 향상이 살기 좋은 나라의 기반이 된다는 자각이 절실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