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1130년~1200)는 24세에 이연평을 만나 그의 영향 속에서 주염계, 장횡거, 이정자(二程子)의 설을 종합 정리해 주자학(정주지학)으로 집대성했으며 이 학문이 고려 말 한반도로 유입되어 조선조 사회의 윤리기강으로 자리 잡게 된다. 거유(巨儒) 주자가 후대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하기 쉬운 후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열 가지를 뽑아 제시한 것 중 제일 마지막에 있는 대목이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라고 적고 있다. 손님이 방문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대접을 소홀히 했다가는 가고 난 뒤에 후회해 보았자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소홀한 대접이란 찾아온 손님을 마땅히 예(禮)로써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맹자는 일찍이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인 사단(四端)에서 예(禮)를 사양지심(辭讓之心)이라 하여 겸허하게 양보하는 마음, 즉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예의 근본(根本)으로 설파했다. 이러한 교훈을 사회윤리로 정착화 시켜 인간관계를 예를 바탕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을 중국에서는 `동쪽에 있는 예의 밝은 군자의 나라(東方禮義之國)`로 불려졌다.
이 대접이란 단어를 뒤집으면 접대가 된다. 접대란 손님을 맞아서 시중을 드는 행위로 내면에 부당거래나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예가 결여된 대접이라 하겠다. 다양화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 접대가 사회전반에 걸쳐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어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올바르지 못한 접대문화가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되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4년 전 국민권익위원회의 김영란법 제정안이 발표됐다. 이 법의 취지는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4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으로 9월 28일부터 시행 예정이다.
이러한 부정부패 방지법 시행을 놓고 지금 우리 사회는 유통업계와 농수축산업계, 골프 등 레저스포츠업계, 호텔이나 외식업계 등이 모두 산업 위축으로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예상하며 큰 저항이 일고 있다. 이 법이 가져올 경제적 손실을 대략 연 11조6천억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통계대로라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마디로 그동안 묵시적으로 불려왔던`부패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말을 그대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2015년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라는 최하위 권이다.
하지만 앞으로 시행 될 이 법의 더 큰 문제는 금품·향응 수수나 부정청탁의 소지가 가장 큰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법 초안엔 예외 규정이 없었지만 몇 년의 입법예고기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설됐다 한다. 또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의 자녀·친척 취업 청탁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도 빼버리고 없다. 국회의원들이 정작 이 법의 대상자인데 자신들의 청탁과 민원엔 눈을 감아 허수아비 법안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행위가 정작 `갑`질 중의 `갑`질 아닌가. 선진국 예를 들면, 지난해 시행에 들어간 독일의 반부패법이 국회의원의 뇌물 수수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과는 우리는 정반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공허하며 수학적인 수치인 `국민소득`만 높다고 선진국이 아니다.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모로써 속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따르게 되고, 얻지 못하면 떠나가게 되니, 떠나가고 따르는 사이에 털끝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말은 조선건국의 초석을 놓은 삼봉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정보위(正寶位)`에 기록된, 위정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 명(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