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각박하다. 비정한 이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 시대에 사는 것 자체가 복 없는 인연 탓인지하고 생각하게 되고 뉴스를 보기가 불안할 정도다. 너무 자주 접해지는 악행의 소행에 정신 건강까지 다칠까 두려운 실정이다. 사실 명확히 빠르게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전부이겠지만 가려져야 할 부분은 가려졌으면 할 때도 많다. 착하다라는 한마디의 말은 능력이 없어도 있어 보이고, 선하다는 말은 젊은이에게 자신감처럼 느껴지는 것, 나에게 인식된 그릇된 생각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참 귀하게 여기는 한마디이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물을 최고의 선에 비유하였고(上善若水) “물이 선이 되는 까닭은 만물을 소생 양육시키고 물은 겸허히 낮고 메마르고 깊고 더럽고 깨끗함을 가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는 도인의 경지에 들었다. 몇 년 전 80살이 지난 한 시인의 연하장 글귀를 시인의 책 제목을 빌어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는 글씨를 써보낸 적도 있다.
내 자신이 하고 있는 서예작업 또한 한자로는 달리 쓰지만 소리 `선(Line)`을 조합하여 만든 물상의 조합이다. 수업시간에 선을 자꾸 긋다 보면 사람은 선(善)해지고, 선해지고 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명확한 지견력(知見力)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 정확히 자신을 볼 수 있다.
禪의 경지에 든다고 선(善)을 지극히 강조하고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수업 시간 설명이 나를 위한 강렬한 외침이며 처절한 반성이기도 하다. 내 주변에 선한 사람 많아 좋다. 나도 본받아 선해지고 싶다. “좋은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좋지 않은 사람은 좋은 사람의 거울이다”라고 하였다. 반대편의 것을 자기의 스승과 거울로 삼을 줄 알며 버려지는 사람이 없이 구제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다산(茶山) 선생께서도 명재상 채제공에게 “할 수 있는 한 선을 행하라”하셨고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자기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 하셨다. “선을 택해 굳게 지켜라” 선에 밝지 못하면 성실치 못한 것이며 악의 뿌리가 일어선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사회는 비정한 사회이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미묘하고 깊은 단계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이상향의 세계가 될 것이다. 어느 때 참 귀하고 소중하며 나를 혁명할 수 있는 여러 글자 중에서 善을 선택하여 당호를 `好善齊`라고 지어 쓰기도 하였다. 생각만큼이라도 선해보고 싶다. 남의 선행을 보면 미치지 못한듯하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참 귀하고 무겁게 자리 매김하는 아침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