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이 시대를 백세인생이라 하지만 나이의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삶의 질이 문제이다. 공자께서 평생 존경의 대상으로 모셨던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대부(大夫) 거백옥(遽伯玉)은 “내 나이 50이 되어 지난 49년간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해 이후 50세를 지비(知非)라 하셨고 그의 삶은 군자에 이르렀다. 또한 다산 선생께서도 시에서 “거백옥은 49세에 잘못을 알았지만 나는 십년 더 젊으니 더욱 바랄 수가 있네. 이제부터 힘써 큰 허물을 없게하리라”하셨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멍하지만 40세 때 생각과 모든 공부가 부족하기 그지없는 단계의 삶이었던 것 같다. 50세를 흔히 이제 앞산을 올려 볼 수 있는 나이라고 한다. 자식 뒷바라지, 부모님 봉양, 사회적 관계의 삶, 자신의 발전을 위한 공부, 모두 다 중요하겠지만 진정 자신의 삶을 성숙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한 것 같아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반성이 크게 따른다. 흘러가는 물에는 두 번 손 씻을 수 없듯이 다시 먼 산을 올려볼 일이다. 그곳에 나를 안아줄 길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허물을 줄이고 삶의 건전성을 위해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치열한 공자의 학습 진행 과정 처럼 세월만 믿지 말고 속지도 말고 희망이나 꿈이라는 단어에도 기대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당차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밝음에서 어둠으로 가는 늙음이 문제되지 않는다. 더할수록 마음마저 떠난 무욕의 삶이 아름다워질 때 나의 평생 글씨 공부도, 작품도 세상의 청량제이며 모든 이에게 삶의 길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설 때, 나의 붓질도 미혹함이라는 단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나의 형상과 정신에 혹됨이 없는 글씨에 공자께서 말씀하신 `불혹(不惑)`을 담고 싶다. 그 속에 정신적 완성의, 가이 없는 열락의 행복이 있을 것이다.
두렵다라는 마음보다 믿으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위해 길을 나선다. 우리 모두를 `답게`만들어 놓을 위대한 시간은 새로운 시작, 지금 이 시점이다. 혹시라도 무겁게 지고 안고 있는 나 자신의 미혹함이 있다면 불혹처럼 쉽게 두고 나 자신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한 생각을 크게 바꾸어 볼 일이다. 가시밭 길을 헤치고 지나야만 치자 꽃 향기 나는 다른 세상이 밝게 문을 열어 놓을 것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