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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君子不器(군자불기)

등록일 2016-07-01 02:01 게재일 2016-07-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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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쓰임의 능력이 정해져 있을까? 그릇도 한가지 용도로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릇은 생각의 문제이며 사유의 물상을 담아내는 일이다. 여기에서 그릇은 단순형상의 그릇이 아닌 정신 함량과 사유의 몫을 담고 기르고 숙성시키는 것이다. 덕을 함양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재주에 편중되지 않아야 하며 어디에서든지 쓰임과 우러러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옛말씀에 “큰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작은 말에 투철한 것을 소기(小器)라 하였으며, 작은 말을 버리고 큰 말에 기뻐함을 대기(大器)라 하며, 큰 말을 들어 크게 쓰고 작은 말을 들어 작게 쓰면 그것은 불기(不器)”라 하셨다.

또한 주희는 즉석에서 “덕을 이룬 선비는 본체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작용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기에 단지 한 가지 재주 한가지 기예를 갖추는데 그치지 않는다”하셨다. 한 가지에 치중되지 않고 두루 갖추어 원만한 사람은 약에 쓰려고 해도 만나기 쉽지 않다. 어찌 군자만 불기가 되어야 하겠는가.

작은 그릇으로는 큰 물을 담을 수 없고 한정된 생각으로는 백화만방의 꽃을 피울 수 없다. 공자는 뛰어난 제자인 자공에게 “너는 그릇(器)이다. 그것도 중요한 제상에 오를만한 아름다운 그릇이다”라고 공야장(公冶長)에 말한다. 불기(不器)는 자신을 닦은 뒤에 많은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도자적 덕성이며 한계가 보이지 않는 무한의 역량이다. 공자께서도 자신의 그릇을 “도의 이론 지식이야 남만 못하랴마는 양심적으로 살며 도리를 몸소 실천하는 것은 내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라는 자평의 말씀, 그만큼 실천이 어렵다”라고 겸손하셨다.

나의 성정과 예술작품이 고루하지 않고 늘 발전적으로 순화되길 바라기만을 손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한정되지 않는 사고, 나 스스로 뭐라고 정하는 순간 나라는 에고(ego)만이 존재하고 남을 위한 수용성은 사라지고 나의 그릇의 크기는 한정된다. 군자의 그릇은 크기와 용도를 정한 바가 없다. 그릇의 크기는 사람을 담는 마음의 넓이와 같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자와 가없는 그릇을 가진 자와 한 나절 만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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