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나 출장을 위해 짐을 꾸린 뒤 가장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책을 고르는 것입니다. 5학년 학생들과 2박 3일의 야영을 떠나기 전에 학교 도서관에 들러 고른 책은 고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 2009)입니다. 월간 샘터에 `새벽 창가에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2009년에 1쇄를 찍었는데 지금까지 89쇄를 더 냈으니 대단한 스테디셀러입니다. 읽어 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위안과 감동을 한 모양입니다. 저도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야영 활동을 하는 틈틈이 책장을 넘깁니다. 한 편 한 편 읽어나가자니 이 책을 추천하고픈 친구들과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SNS에 책 표지와 가장 감동한 글귀를 올립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 대구, 서울 등지에 사는 친구들과 제자들의 댓글이 올라옵니다. 대학생이 된 제자들은 이즈음이 시험기간인가 봅니다. “시험 기간인데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댓글을 씁니다. “시험 끝나면 꼭 읽어보렴.” SNS에 올렸던 글을 소개합니다.
“민숙아,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용한 글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실린 에세이 `무릎 꿇은 나무` 중에 일부입니다. 민숙은 장영희 교수의 제자입니다. 그 어떤 학생보다 재능이 뛰어났고, 밝고 명랑하고, 겸손하면서도 똑똑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해 늘 친구들을 다독거렸던 제자, 민숙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석`의 삶을 살겠거니 장영희 교수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민숙의 삶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신랑감으로 보였던 그`가 남긴 상처로 넘어지며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한번 빗나가기 시작한 삶은 자꾸 엉뚱한 데로만 치달아, 외로웠던 너는 그곳에서 다시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새삼 돌이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경험 끝에 이제 넌 이 넓고 험한 세상에 두 살짜리 아기와 혼자 남게 되었구나. 아프고 지친 너는 이제 무심히 너를 지나쳐 앞으로 가는 사람들 뒤에 홀로 남아 이 무서운 삶을 살아 내야 한다”고 제자의 쓰라린 삶을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불행`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던 제자의 `불행`앞에 장영희 교수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면서도 위의 `운명자루`이야기를 민숙에게 들려줍니다.
불행은 `속수무책`이고 한번 빗나가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삶을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불행도 행복도 총량이 있고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민숙에게는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스승이 있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작은 행복과 축복을 헤아리는 긍정적인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장영희 교수는 로키산맥 해발 3천미터 수목 한계선 지대에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 서 있는 나무들 이야기로 민숙에게 쓰는 위로와 희망의 편지를 마칩니다. 그 이야기는`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16쪽을 펼쳐 꼭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시작하기`,`내가 살아보니까`, `괜찮아`,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와 같은 에세이는 색한지에 예쁘게 출력해서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읽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