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획 속에 인생의 삼막이 있고 한 작품속에 희로애락 젊음 늙음 만용 성실 오만 편견 지식 지혜 모든것이 다 들어 있다. 명작은 한 점과 한 획이 소홀함이 없이 짜여진 절대적인 화합의 결정체이다. 서로 등 내어주고 어깨 벌려주고 끌어 안아주는 우리들의 따스하고 정감어린 토담집 담벽의 이상하지만 밉지않는 결합의 조화가 참 오랫동안 기분이 좋아진다. 획과 획의 비우고 채워주고 양보해주는 덕분에 그 자리가 환해지고 비로소 글자가 반야꽃이 되어 피는 것이다.
이런 작품 본 적이 언젠가 있었다. 기업에서 몇 십주년 기념 사보집의 표지에 작품을 부탁하였다. 글제도 준비하지 않은 부탁인지라 나는 논어의 글귀에서 `화이귀(和而貴)`를 작품으로 완성했다. 기업에 노사의 관계만 어찌 화합의 조화가 귀하겠는가. 인간의 관계는 물론이고 음악 시 자연현상 등 살아있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모두가 사물과의 어울림이 중요하다. 다투지 않고 시샘치 않는 그 조화의 묘미가 바로 질서이며 정도이며 상생이다.
서예가의 삶을 살다보면 남의 부탁으로 작품 제작이 가끔 있다. 한 폭의 작품을 부탁받는 경우에 나는 많은 글귀 속에 화(和)라는 단어를 잘 사용한다. 쉽고 단순한 것 같지만 평생 가지고 살아도 쉽지 않는 귀한 것이다.
한참 지나버린 나의 결혼 때만 하더라도 주변 서예인들이 축하의 글씨 작품이 많았지만 그중에 和와 敬을 작품으로 한 것을 걸어두고 새기고 살고 있다.
和라는 글자는 어원적으로 온화 화목 조화 따뜻 응하다 화답 대답의 의미이며 和는 會와 같이 만난다로 쓰여 사람의 목소리와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다의 뜻에서 파생되어 화목하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좋고 좋은 것 중에 “내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식구들 입에 밥 들어가는 일이다.”
공자는 학이편에서 “예의 쓰임은 조화를 귀히 생각한다.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조화의 중요성만 알고 예를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행하지 말아야 한다” 하셨다.
귀한 예도(禮道)의 조화로운 행함, 그것이야 말로 참 아름답고 맛나는 일이다. 이른 저녁 이 한 글자만 생각해도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묘한 힘이 있다. 이것이 작품과 글자의 기운이고 문자향이고 서권기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