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을 갱신했다. 절차에 따라 먼저 시력검사를 했다. 스푼처럼 생긴 눈가리개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시력 측정 판을 보았다. 검사관이 가리키는 숫자와 그림이 두 겹 세 겹으로 일렁거리더니 어느 순간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함과 당황스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얼른 눈을 가렸던 가리개를 떼고 측정 판을 보니 잘 보였다. 나의 행동을 본 흰 가운을 입은 검사관은 번개같이 `그렇게 하면 불합격 처리합니다.`라고 말했다.
기계처럼 냉정한 그 말에 겁이 덜컹 났다. `불합격`에 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시 검사관이 하는 지시대로 착한아이처럼 왼쪽 눈, 오른쪽 눈을 가리고 보이는 대로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결과는 오른쪽 눈은 영점 팔, 왼쪽 눈은 영점 오란다.
오른쪽 눈에 의지해서 운전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매우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양쪽 눈의 시력이 차이가 많으므로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은 후에 안경을 반드시 쓰고 운전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경을 쓰니 앞이 환하게 보인다.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니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있다. 비 내리는 날 밤길운전도 불편함이 거의 없다.
어머니께서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어머니는 의사선생님께 양쪽 눈을 한꺼번에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수술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만분의 일이라도 잘못 될 수 있어요, 의사는 만분의 일의 실수로 볼 수 있지만 환자는 백 퍼센트 실패인거예요. 완전실명이 될 수도 있으니 한쪽 눈을 먼저 하고 안정이 된 후에 다른 한쪽 눈을 마저 하자고 했다. 완전실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어머니의 표정은 긴장이 역력했다. 정해진 날에 왼쪽 눈을 먼저 수술한 후, 안대로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에 의지하여 생활했다.
오른쪽 눈을 수술하고는 왼쪽 눈으로 산천초목을 보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가벼운 여행도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불편한 기간이 오래되더라도 의사선생님의 말 듣기를 참 잘 했다고 한다.
또 인재(人災)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열아홉 살 청년이 희생되었다. 우리의 아들이 밥 먹을 틈도 없이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변을 당했다.
2인1조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매뉴얼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매뉴얼과 시스템을 운운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유리 상자 속에 갇힌 박제가 되려는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형국이 언제까지 이어지려는가.
행정안전부를 안정행정부로 바꾼 까닭은 무엇일까. `안전`을 명칭의 첫 글자로 앞세워도 효과는 크지 않는가보다.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면 단순화가 특효약이 아닐까 싶다. 개인이든 단체든 안전규정을 어긴 책임자는 예외 없이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그들을 엄정하게 감독하면 통탄할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나. 또 사고의 뒷수습을 공식처럼 되풀이만 하려나.
각계에서 진실을 규명하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다고 야단일 것이고, 몇몇 사람만이 처벌을 받을 것이고, 처벌 받은 이들은 관행과 억울함 사이에서 가슴을 두드릴 것이고, 솜방망이 처벌에 힘없는 서민은 분노할 것이고, 이어서 여론이 들끓을 터이고, 백성들은 슬퍼하며 희생자를 추모할 것이고, 그곳에는 리본이 꽃잎처럼 바람에 나부낄 것이며, 마침내 잊어지고 고요해지리라.
자연재해도 미리대비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거늘 하물며 인재임에랴. 후렴구만 언제까지 목청껏 외칠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