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 주실고택의 사랑방 마루
□성인처무위지사(聖人處無爲之事):성인은 무위의 일에 처한다
그분은 연고도 없는 동네에 갑자기 들어오셨다. 처음엔 아랫마을에 사셨다. 머리를 박박 깍은 할아버지는 대나무에 소금을 넣어 불에 구워 먹었다. 할아버지가 소금 굽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 죽염이라는 말을 알기도 전에 죽염을 맛보았다. 할아버지는 올 때도 그러했지만 갈 때도 홀연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해가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엔 아랫말이 아니라 우리 집 옆집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에 쥔을 붙였다. 할아버지는 소금을 굽지는 않았다. 동네사람들의 바쁜 일손을 돕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나무로 의자나 책상 같은 것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소금이나 구워먹는 괴팍한 할아버지와 밥을 먹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식사를 하고 나시면 꼭 밥그릇에 물을 따라 드셨다. 밥그릇은 늘 깨끗했다. 하루는 당돌하게 “할아버지는 왜 더럽게 그런 물을 마셔요. 컵에 드시면 되지….” 할아버지는 많이 남지 않는 이를 드러내고 사람 좋게 웃었다. “내가 먹은 밥그릇인데 뭐가 더럽겠냐?” 나는 지지 않고 “그래도 고춧가루도 묻고, 국도 섞이고, 그런 걸 물에 말아 먹으면 어떡해요?”라고 쏘았다. “그 물이 더럽게 보이더냐?” 할아버지는 네가 먹은 것 역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마디 가르칠 법도 했건만,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좋았던 건 그때부터였을까. 할아버지의 맨질맨질한 머리를 버릇없이 만져본 적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그 때도 웃을 뿐이었다. 자주 할아버지 집에 들렀다. 할아버지가 다루는 대패니 끌이니 그런 목공구보다, 목탁이나 염주를 뚝딱 만드는 솜씨가 더 신기했다.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어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물었다. 그 집에서 한 해를 다 채우셨을까.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평상 하나를 만드셨다. 홈과 이음으로만 이루어진 평상이었다. 그 평상을 우리 집에 가져다 두고 할아버지는 동네를 또 떠났다. 나는 여름의 대부분을 그 평상에서 보냈다. 밤에 잘 때도 평상에서 잤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궁벽한 산골은 그야말로 어둠으로 가득했다. 별을 세는 것보다 어둠을 보는 것이 좋았는데, 어둠은 등질한 어둠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러 겹의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다. 꿈속으로 접동인지 두견인지 알 수 없는 새의 호곡 소리가 스몄고, 뒤안 댓잎은 바람 없이도 흔들렸다. 이슬에 이불이 젖는다고 어머니는 성화였지만, 나는 밤마다 평상에 이불을 깔고 밤의 어둠을 들었다.
뒤늦게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고매한 스님이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주지스님이 우리 마을에 들른 것은 당신 나름의 수행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분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말했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행동으로 보였다. 이를테면 할아버지는 나와 밥을 먹을 땐 밥그릇에 물을 따라도 될 정도로 정갈히 밥을 드셨다. 한 번도 불경을 외거나 목탁을 두드려 스스로를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당신의 가르침은 가르침의 내용보다 가르침의 방식 속에 그 정수가 있는 듯했다. 그러한 깨달음은 수십 년이 지나서 내게 도착했다.
□천의무봉(天衣無縫):선녀옷엔 솔기가 없다
영주 무섬 마을에서 숙박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주말이었고 예약도 하지 않았기에 그냥 동네나 한 바퀴 둘러볼 요량이었다. 무섬마을 `자료전시관`에 들렀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숙박할 만한 곳이 있냐고 여쭈었다. 사람 좋게 생긴 관계자는 전화를 여기저기 돌리더니 한 곳을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 곳이 `주실고택`이다. 주인어른은 서글서글하고 시원시원했다. 한 번 누워나 보자며 방에 누웠더니 해거름 녘에서야 깼다. 마을을 크게 돌아 뒷산에도 올라가고 싶었건만 외나무다리를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정이 되었다. 친구들은 방에서 잠들고 나는 손바닥만한 사랑방 마루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할아버지의 평상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 늦은 시간에 대학생 한 무리가 바로 옆집에 도착했다. 그들은 짐을 풀기 무섭게 게임을 했다. 술을 마셔야 노는 것 같이 여기는 `쉰`세대와 저들은 확실히 다른 세대였다.
밤을 듣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신 학생들의 웃음을 눈을 감고 지켜보았다. 남자와 여자가 모인 자리에는 어떤 흥분이 깃들기 마련이다. 서로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들이었지만, 그 조심성 속에도 팽팽한 긴장을 읽을 수 있었다. 눈을 감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누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고, 누가 누구의 관계를 질투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나의 의도들에 왜곡되어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이리저리 꿰매어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무봉(無縫)한 평상을 떠올리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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