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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묵위식지

등록일 2016-05-27 02:01 게재일 2016-05-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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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나의 서재 문 앞에 이렇게 써서 붙여놓고 드나들면서 깨우쳤다. “침묵을 통해서 이해하고 침묵을 통해서 효과를 얻고 침묵을 통해서 이익을 얻자”라고. 침묵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음의 단순행위가 아닌 쓸데없이 하는 말을 의미한다. 손해를 당하고 비난하지 않음도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기쁜일에 흥분치 않기와 자랑하지 않는 일이 어렵다.

침묵하려면 적어도 입안이 검어져야 한다고 입구에 검을 흑(黑)을 쓰기도 한다. 두꺼운 침묵만이 명철한 지견력을 가져올 수 있다. 공자께서는 평소 배우는 것에 싫증을 내지 않고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제자들 앞에 모른다는 것을 당당히 하셨다. 모른다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라는 말씀이 생생하다. 또한 남을 가르치는 일도 평생 게을리 하지 않는 덕높은 교육자였다. 나 자신도 10여 년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들어앉았다. 가르치는 일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부족하면서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성숙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세상이 선택하고 버리는 일이 전부이지만 참 잘한 선택 중 하나이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 이것이 교학상장이다. 장유(1587~1638)는 “침묵은 온갖 미묘함이 나오는 문, 침묵만한 것이 없고, 교활하고 영악한 사람은 말이 많고, 어수룩한 사람은 침묵하네. 급하게 서두르는 자는 말이 많고, 마음이 안정된 자는 침묵하고, 말하는 사람은 수고롭고, 침묵하는 자는 편안하네”라고 말했다.

말이 많으면 선하지 않다는 말도 무서운 말이며 말이 많으면 궁하기 마련이다라는 말도 겁나는 말이다. 말이 많으면 반드시 말로 망한다. 세상에 내밷는 쉬운 한 마디에 귀한 자리는 물론 생사까지 버려진 이가 한 두 명인가. 나는 가끔 아는 것이 없어서 그늘처럼 침묵 할때도 있다. 모른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고 미안할 때도 있지만 집에 돌아와 돌이켜보면 그래도 다 기억되지 않는 그들의 말도 중요하지만 나의 무거운 침묵으로 인해 맑아지고 밝아질 때도 있다.

비겁하게 몰라서 침묵하기보다 남의 말을 귀 기울이고 젊은이들에게 힘을 주는 어른들의 경청과 침묵이 아쉬운 세상이다. 나 자신도 벌써 어디 앉으면 자꾸 말이 많아진다. 못 배운 어른 노릇 하려는 짓인가 싶어 겁이 난다.

나이가 들면서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며 특별히 조심한다. 오늘도 자연의 말없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침묵에게 매달리고 싶다. 보잘 것 없는 잡문이 길어지는 것 또한 말이 많아지는 것일 것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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