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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록일 2016-05-23 02:01 게재일 2016-05-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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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시인의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전문입니다. 신동엽 시인 하면 으레, `껍데기는 가라`를 떠올립니다. 자유와 저항의 시인이라고 불리지만 제가 봤을 때 신동엽 시인은 수도자, 구도자의 그것과 더 가깝습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하늘`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먹구름`, `쇠 항아리`는 또 무엇일까요? 시를 다시 한 번 정독해보시기 바랍니다. 문학의 차원이 아니라 종교와 구원의 차원에 가닿은 시편입니다.

원효는 무덤 속에서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을 깨달았습니다. “어젯밤 잠자리는 흙굴이어서 편안했는데, 오늘밤 잠자리는 무덤 속이라 매우 뒤숭숭하구나. 알겠도다. 마음이 생겨나므로 수많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므로 흙굴과 무덤이 둘이 아니구나. 또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의식일 뿐이니,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

원효가 깨달은 것은 인간은 누구나 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쇠 항아리`를 저마다 덮어쓴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는 쇠 항아리. 이 얼마나 끔찍하고 몸서리 칠 일입니까? 그러니 삶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일 수밖에요.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 법정 스님이 옮긴 `진리의 말씀`(나무를 심는 사람, 1999)에도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라고 합니다.

혜능도 금강경 구결의 서문 첫머리에서 `무주위체`라고 했습니다. `토대를 허무는 것이 불도의 관건`이란 선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색안경을 쓴 채 살아갑니다. 쇠 항아리를 덮어쓴 채 그 속이 세상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색안경을 벗고 쇠 항아리를 깨부수는 것. 그게 바로 `무주위체`입니다.

금강경의 유명한 사구게입니다. “네가 존재한다고 믿는 그것들은 객관적 실제가 아니다. 그것들은 네 의지와 관심의 투영, 다시 말해 너의 그림자일 뿐이다. 이 사태를 선명히 자각할 때, 그때 너는 붓다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붓다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하늘을 보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애초에 없습니다. 내가 바로 먹구름이고 내가 바로 쇠 항아리입니다. 내가 그림자이고 허상임을 깨달아야 비로소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구원의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외경과 연민에 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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