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산을 딛고 서 있었다. 사무실의 창문들도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하루 온종일 의자 속에 묻어 두었던 하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고단함이 발끝까지 전해졌다.
동료들이 하나 둘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여기저기 사무실의 불빛들이 도미노처럼 꺼져갔다. 바로 옆 사무실에는 전구들이 박쥐처럼 까맣게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퇴근을 결심하였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귀신같이 찾아오는 배고픔이었다.
아버지의 늦은 퇴근은 무서운 저녁으로 기억되었다. 세상의 부당함과 당신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오셨기 때문이었다. 잠자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잠을 다 깨우고 장남하며 나의 볼에 입맞춤을 하셨다. 지독한 술 냄새와 까칠하고 따가웠던 굵은 수염의 공포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의 퇴근과 저녁이 무서웠다.
카톡하는 소리가 반갑다. 객지에서 생활하는 두 딸들이 언제부턴가 내 퇴근시간에 맞추어 카톡을 보내오기 시작하였다. `아부지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힘내세요` 같은 내용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가 처음 보는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 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저녁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나는 결코 아버지와 같은 저녁을 보내지 않으리다. 내 아이들에게 공포스럽고 무서운 저녁의 기억은 남겨주지 않으리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이었다. 술을 달고 오지 않는 퇴근길, 세상의 고단함까지 나와 함께 현관문을 넘지 않는 그런 저녁을 다짐하였다. 출근이 뿌듯함이라면 퇴근은 고마움과 감사함이었다. 아침이 희망이라면 저녁은 그 희망을 다시 정비하고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며 기회였다.
이제 결혼생활 26년에 오십 대 후반이 되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나도 아버지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보니 내 아버지의 퇴근길과 저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한 아버지의 고단한 저녁들이 지금의 밝은 내 저녁을 가져다 주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휴대폰 벨이 울린다. 마눌이라는 글씨와 함께 아내의 목소리가 이내 귀에 가득해졌다. 늘 하는 이야기다. 마누라 보고 싶어도 천천히 운전조심 하란다. 아내의 목소리 너머로 보글보글 김치찌개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은 아내의 손 맛 때문에 더 행복해진다.
달이 아파트 22층 옥상 위에 걸터앉아있었다. 아까 사무실에서 봤던 그 달이었다. 29년째 하는 퇴근길이지만 늘 새롭고 즐겁다. 아침에 나가서 다시 돌아오게 해주는 마법 같은 시간이 저녁이다.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오겠다고 한 가장의 약속을 지켜주는 것 또한 저녁이다. 퇴근이 좋고 저녁이 고맙다.
오늘 저녁에 다시 한 번 약속하였다. 아버지처럼 치열하고 열심히 살더라도 아버지와 같은 저녁, 아버지와 같은 퇴근길은 결코 흉내 내지도 않으리다. 그것이 팔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의 소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일 저녁 아내의 반찬이 기대되고 두 딸의 카톡과 새로운 이모티콘이 벌써 궁금해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