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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의리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4-25 02:01 게재일 2016-04-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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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7명이 탄 봉고차가 시골길을 가다가 낭떠러지에 굴렀다. 한 농부가 쓰러진 의원들을 모두 땅에 묻어버렸다. 경찰이 달려와서 물었다. “일곱 명이 다 죽었던가요?” “몇 사람은 자기가 살아 있다고 하데요” “그런데도 다 묻어버렸다구요?” “아, 글씨, 정치가의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미국 유머책에 있는 이야기다.

2, 30년 전 국내 한 일간지 4컷 만화가 전국적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와 국회의원이 강에 빠지면 누굴 먼저 건져내겠나?” “국회의원을 먼저” “무슨 이유로?” “강물이 오염되거든” 당시에도 국회의원 인기가 형편 없어서 “염치가 있거든 국회의원 배지 떼고 다니라”했다.

정치가가 건널목 저 편에서 나를 알아보고 서둘러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면 “선거 때가 됐구나” 알아먹고, 그 정치가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면 “아, 선거 끝났구나” 짐작하면 된다는 유머도 있다. 청나라 말기에 이종오라는 역사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중국 역대 권력자들의 면면을 조사한 책을 냈고, 그 책 제목이 `후흑학(厚黑學)`이었다. 권력을 잡으려면 얼굴 두껍고 속이 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선거 전에는 간이나 쓸개를 다 내어줄듯 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라도 된 듯이 온갖 공약을 쏟아내지만, 선거 후에는 깡그리 잊어버린다. 부모·자식 간에도 권력을 나누지 못하니, 그 세계가 얼마나 냉혹한가.

올해 1월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가 김종인씨를 찾아가 “차기 대선때까지 당대표를 맡아달라” 부탁을 했고, 김씨는 면전에 대고 “나는 원래 정치인의 말은 믿지 않는 편이다.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다 해봤기 때문에 정당의 속성을 잘 안다” 했고, “각서를 쓰고도 이행하지 않는 것이 정치인”이란 말까지 했지만, 결국 그가 당을 맡아 총선에서 제1당이 되고 나니, 반김(反金)들은 노골적으로 “나가달라” 한다. 김 대표의 역할은 `총선까지`라는 것이다. `대선까지`로 약속한 문 전 대표는 못 들은 척 딴전을 피운다. 신뢰와 의리가 실종된 정치판에 끼어보겠다고 `비례2번`을 받은 그의 속은 하얀가.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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