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신흥시장의 추격에서 가장 늦게 따라잡힐 산업은 자동차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우리도 배우는 데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도면을 보여 줘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자동차는 사람의 경험치가 많이 녹아 있다. 그 어려움에 정주영이라는 젊은 거인의 도전이 열매를 맺어 한국은 1인당 GDP가 3만불에 못 미치는 나라 중 유일하게 차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는 국가가 됐다. 이대로만 가면 우리의 원가경쟁력은 계속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동차 산업의 판(paradigm)이 바뀌고 있다. 최근 자동차 공유(car sharing)가 대세다. 저성장 속에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경비절감이다. 가계의 가장 큰 부담은 거주비와 자동차 운영비인데 차는 집보다 훨씬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자동차 공유는 차 업계에 치명적이다. 그만큼 자동차 수요의 감소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동차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유 경제가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동차 공유는 세가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 자율주행차다. 차량 내 소프트웨어에 여러 사람의 서비스 사용 일정을 입력하면 차가 알아서 돌아다닌다. 주차비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구글, 애플이 주도하며 GM, Ford가 가세했다.
둘째, 도심 내에서 소형 전기차를 택시 잡듯 쉽게 렌트(rental)하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경우 고속전철을 이용한다. 다른 도시에 진입하면 다시 소형 전기차를 쉽게 빌려 쓸 수 있으니 굳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테슬라(Tesla)가 최근 Model3라는 보급형 전기차를 선보였다. 한번 충전에 346km를 갈 수 있다면 도심내 1일 주행은 문제 없을 것이다.
셋째, 최근 BMW는 자사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과 소통해 이들이 차를 쓰지 않을 때 BMW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젊은이들이 시간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서비스(mobility provider)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제는 BMW조차 기계를 파는 것보다 사람들의 필요를 엮는 플랫폼에 관심을 둔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아직 품질개선에 집착한다. 욕구불만일까? 1989년 미국에 처음 수출을 했다가 품질불량으로 쫓겨났던 아픈 과거가 있었다. 2005년 NF소나타를 출시한 이후 우리 기술로 엔진을 독자 설계하면서 품질이 급격히 개선됐다. 부는 따라왔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차의 초심을 잃게 한 계기가 된 것 같다.
현대차는 `제 값 받기`를 원하며 차 값을 인상했다.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겸손을 잃어 버린 것 같다. “우리 제품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지 말라”는 식으로 변질된 것처럼 보였다. 현대차를 방문했을 때 접수 방법을 모르자 리셉션에서 잡상인 취급하는 모습을 보며 거만해진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정주영은 배움을 위해 미쓰비시에 고개를 숙였다. 갈급함이 사라진 가운데 무슨 혁신이 있겠는가?
정몽구 회장은 성공한 경영인이다. 그의 부친처럼 직관과 추진력으로 2000년대 중반 놀라운 의사결정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지도력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창조는 카리스마에서 싹트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싹은 창조라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주식은 만기가 없는 증권이라고 가르친다. 틀린 가르침이다. 기업도 죽는다. 사람의 수명처럼 죽는 시기를 모를 뿐, 늙고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 기업들을 많이 본다. 일본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큰 사고 없이 조용히 죽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동차는 한국에게 너무 큰 사업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죽을 때 자식을 남긴다. 스승의 최고의 덕목은 자신보다 나은 제자를 남기는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도 뭔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