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 다움을 발현하는 능력을 가진 영원한 대 스승 공자는 헌문편에서 “천리마는 그 힘을 일컬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덕성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덕은 조련되어 얻어진 탁월한 능력이며 옛말에 늙은 말이 길을 안다”라는 `노마식도(馬識途)`는 양마(良馬)의 덕성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의 덕성은 어떻게 하여야 성숙해지는 것일까. 선에 대한 향상적 지향을 가지는 일이고 선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가끔 참 그분 덕이 있어 보이더라, 참 덕있는 분이더라는 말을 들으면 그저 찾아뵙고 무릎 조이고 뵙고 싶다. 자신에게 덕성이 없으면 남의 덕을 받들어 볼 수도 모실 수도 없다. 다산 선생은 덕을`곧은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나라나 가정과 작은 집단을 이끌어가는 일도 다르지않다. 우리사회에 소통, 융섭, 융화, 이러한 말들이 생겨난 이유도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게도 되고 올바름에 이르게 된다.”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이라고 위정편에서도 말하고 있다. 바로 덕치주의다. 덕은 귀하고 값어치 있는 단어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도경과 덕경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덕은 성인이 하늘과 인간을 감동시켜 태평시대를 이룩할 수 있는 근거이며 사욕이 없는 상태의 마음이며 사람에게 주어지는 때묻지 않는 마음 순화되고 깨끗한 본성의 상태이다.
서예 전시회에 가면 꼭 만나게 되는 작품 한 점이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다. 너무 흔하기에 귀히 여기지 않지만 오래 머물러 깊이 새겨 볼 일이다. 한 번쯤은 덕이라는 존엄한 단어와 나는 누구에게 따뜻한 공명(共鳴)의 이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나에게는 큰 재산인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 닭울음 소리도 잘 들으면 가르침이고 이웃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