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웅 SBS `리멤버`서 열연<BR>“입체적인 인물이라 좋았죠”
1990년대 후반 서울의 한 법대를 다니던 젊은이는 어느 날 신림동에서 대학로로 인생 방향을 틀었다.
“집안에 판검사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던 아버지에 맞서 `아들의 전쟁`을 치르고 1997년 연기를 시작한 청년의 무명 생활은 길었다.
“너는 (성공 확률에서) 복권”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면서도 연기를 접지 않았던 그는 이제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배우로 성장했다.
지난 18일 미니시리즈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인 20.3%의 시청률로 종영한 SBS TV `리멤버- 아들의 전쟁`에서 박동호 변호사로 열연한 배우 박성웅(43)이다.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성웅은 “제대로 전공을 살리고 있다”면서 껄껄껄 웃었다. `리멤버` 촬영을 끝내자마자 새 영화를 촬영 중인 그는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고 솔직했다.
◇ “유승호, 팬으로서 사랑해…갈수록 서로 의지”
서진우(유승호 분)의 `키다리 아저씨` 같았던 박동호는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 진범이 서진우 아버지가 아닌 재벌가 자제 남규만(남궁민)이라는 증거를 확보해 놓고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를 포기, 진우와 시청자들의 원수가 됐다.
돈 냄새만 쫓는 줄 알았던 박동호는 이후 서진우가 치르는 `아들의 전쟁`에 동참,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박성웅은 “원래 박동호 머릿속에는 서진우 부자 누명을 벗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면서 “다만 때를 기다린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호가 발톱을 감추고 있었던 건, 남규만의 자백 동영상을 4년 전에 유포했어도 그 재판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어요. (남규만 측에) 모두 매수된 상황이어서 그때 접었던 거죠.”
박성웅은 극 중 이색적인 `브로맨스`(남자간 뜨거운 우정을 뜻함)를 선보인 유승호에 대해 “제가 만난 남자 중 가장 착하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1993년생인 유승호는 박성웅보다 스무 살 어리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승호를 정말 팬으로서 사랑하게 됐어요. 또 나이답지 않게사람이 진중해요. 군대를 왜 그렇게 일찍 다녀왔느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 자신이 원해서 연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더라고요. 연기 욕심도 있지만, 그걸 티내지 않고 열심히 하는 친구에요. 나중에는 갈수록 서로 의지하게 됐어요.”
◇ “박동호, 입체적인 캐릭터라 마음에 들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가, 재벌과 결탁해 진실을 저버리는 검사, 그와 손잡고 무고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조작하는 형사, 살인 청부 의뢰에 응하는 조직폭력배 등 `리멤버`에는 온갖 `나쁜 놈`들이 넘쳐났다.
박성웅은 가장 악인을 꼽아달라는 말에 단박에 “누구겠어요, 미친 놈(남규만)이지”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남규만 캐릭터가 중간에 코미디로 변했죠. 제가 (변화) 소스를 제공했어요. 남규만이 박동호 면회를 온 장면에서 `내가 먼저 죽일끼다` 라고 말해보라고 남궁민에게 제안했는데 이후 점점 (캐릭터가) 진화하더라고요. 남궁민이 처음에 캐릭터를 세게 보여줬다가 마지막에 측은지심도 생겨날 수 있도록 잘 소화한 것 같아요.”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이한 박성웅은 `리멤버`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표했다.
그는 “`리멤버` 이전까지는 센 캐릭터로만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입체적인 캐릭터라 너무 좋았다”면서 “이번에는 시청자들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또 통쾌하게 해주기도 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박성웅은 한때 기라성같은 선배 연기자들 뒤에서 건달3, 행인1, 기자2로 등장하면서도 “나도 나중에는 저런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연봉 50만원`인 시절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대중에게 연기를 통해 희로애락을 안겨주는 삶이 좋아 보였어요. 지금의 위치까지 올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포기 안 할 확신은 있었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