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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와 가을전어

등록일 2015-10-16 02:01 게재일 2015-10-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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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가을은 쓸쓸하다. 계절을 타기에는 나이테가 굵지만, 그래도 허전하다. 씨 뿌리고 가꿔야 했을 지난 계절 허송(虛送)한 인과응보(因果應報)다.

그래서다. 오래전 망각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까닭은. 어떤 노래는 정말 속되다. 그런데도 손발이 오글거리지 않는다. 외려 유튜브에서 찾아 듣기도 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해지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가 보다. 예전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노래를 찾아 듣다니?!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청중을 대상으로 시대를 풍미(風靡)하는 노래를 유행가라 한다. 유행가는 길어도 한두 해의 내구력(耐久力) 밖에 가지지 못한다. 다른 유행가에 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행가의 비극일지 모르지만, 유행가의 미덕이기도 하다.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는 전술일지도 모른다. 짧지만 강렬한 생애를 살다 명멸(明滅)하기 때문에 유행가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다. 동시대인을 매료하는 독성도 강하다.

복고풍이 유행하면 나이 든 세대를 위한 흘러간 노래가 인구에 회자(膾炙)하기도 한다.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 시공간과 관계와 사랑을 추억하는 끈끈한 노래가 대세(大勢)를 이루는 철지난 노래방이랄까?!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인간을 위한 만가(輓歌) 비슷한 회고조의 노래는 어쩔 도리 없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시대의 전위(前衛)와 첨병(尖兵)으로 씩씩하고 당당한 청년세대와 불가피하게 차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보시라! 요즘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에는 복고풍이 대세를 이룬다. 1천만관객을 불러 모은 `암살`에 이어 고풍스런 `사도`가 유행한다. `응답하라 1994`에 이어 `1988`도 기지개를 켜는 모양이다. 여기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바람이 드세다. 유신독재 시절 창궐(猖獗)했던 국정교과서 바람이다.

40년 전으로 회귀(回歸)하는 교육부와 정부여당 행태는 70~80대 노인세대를 겨냥한 향수(鄕愁) 자극에 다름 아니다. 선거철이 임박했고, 정치에 역사를 써먹으려는 고도의 술수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은 악재(惡材)로 작용할 공산(公算)이 크다. 휴대전화 보급률 세계 1위, 인터넷 속도 세계 4위의 대한민국 백성이다. 유신시절이야 깜깜이 정국에 정보독점이 우심(尤甚)했던 원시와 야만의 시대! 우리는 오래 전에 그것과 작별했다.

보수언론도 난색(難色)을 표명하는 판국에 국정교과서라니. 이것을 일컬어 시대착오(時代錯誤)라 한다. 최신의 노래가 최대의 갈채를 받는것은 고금동서(古今東西)를 막론하고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시대의 첨단(尖端)을 걷지는 못할망정 시대를 퇴행(退行)시키고 국민의식을 역행하는 시도는 종당(終當)에 성공할 수 없다.

어시장에 가을전어가 풍성(豊盛)하다는 소식이다. 집 나간 며느리도 불러들인다는 전어라지만, 전어도 한철이다. 우리는 가을 이외에는 전어를 찾지 않는다. 적절한 시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생선과 유행가다. 물 좋은 때 놓치면 부패하고 낡아져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제값 받고 팔려면 시세를 읽고 평가하는 밝은 눈과 치밀한 계산속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밝히는 등불은 아니어도, 맹인 인도견(引導犬) 쯤은 돼야 정부여당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조만간 가을전어 앞에 두고 흘러간 유행가에 귀 기울이며 소주 마시려고 한다. 유신독재 그리워하는 70~80대 노인들 앞에 두고 최신의 노래 들려줄까 생각한다. 세계는, 시대는, 역사는 저만큼 앞서서 질주(疾走)하는데 어째서 한반도에는 낡아빠진 복고(古)와 넋두리가 지배(支配)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래서 `헬조선`에 거주하는 20~30대 청춘에게 무슨 희망과 빛을 선물(膳物)할 수 있단 말인가?! 아아, 시대여! 빛이여! 희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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