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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잘 가게나

등록일 2015-07-03 02:01 게재일 2015-07-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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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석 수필가·홍익출판사 대표
우리는 저마다 고유의 향기를 지니고 태어났다. 삶에 있어 만남은 필연일까. 귀중한 친구가 한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년시절의 우정은 더욱 남다르게 느껴진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처럼`인생은 굵고 짧게 살아야지`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던 친구가 어느 날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며 연락이 왔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주유소도 경영하는 친구였다. 지나친 욕심이 과오를 불렀을까. 금융사고로 IMF가 시작될 무렵 직장과 함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도피 생활을 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새벽부터 끼니도 거른 채 막노동으로 그날그날 벌어먹고 살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몸에 이상을 느끼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당장 큰 병원으로 가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소견서를 내밀었다. 곧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찾아간 친구가 가장 먼저 나에게 연락을 한 것 같다. 그는 동네 병원에서 늘 건강검진을 받아왔지만, 이번 만큼은 자신도 겁이 났던 모양이다.

친구의 입원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는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 십 여일 후엔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병실에 누워있는 친구에게 적은 돈을 건네며 쾌유를 빌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친구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답답한 친구의 부인은 좋은 사람들 옆에 놔두고 왜 저리 누워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더 이상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아들 삼 형제를 두었다. 그중 막내가 군복무 중에 달려왔다. 자식을 알아보기는커녕 의식도 없이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퇴원 날짜만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힘을 내라고 마음속으로 아무리 응원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심한 운명의 시간만이 턱밑에서 기다릴 뿐이었다.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보냈다. 이곳에서 다들 모이기로 했다. 꺼져가는 촛불을 바라보며 병실을 나와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위중하다는 기별에 늦게 도착한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친구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바탕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신은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더니만 열심히 일하고 인생도 즐기며 살아갈 한창 좋을 나이에 데려가다니. 오늘따라 저승사자가 야속하기만 하다. 분위기 메이커로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던 친구의 영정을 바라본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 속의 친구는 젊은 모습으로 환히 웃고 있다.

조화를 주문했다. 미처 연락 못한 친구들에게도 기별을 넣었다.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가 불과 십여 일 만에 죽어 나온 그에게 허무함을 감추지 못했다. 숨이 붙어 있는 친구를 보고자 뒤늦게나마 먼 길을 달려온 친구도 인생의 무상 앞에 끝내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친구의 아내는 먼저 간 남편이 불쌍하다며 우리를 붙잡고 오열했다. 왜 하필이면 오늘이냐고 통곡을 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오늘이 친구의 생일이었다. 이럴 수가! 친구는 처음 세상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중이었다. 죽음은 곧 삶이고 삶은 곧 죽음이란 말인가. 어쩌면 죽음은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못다 한 삶을 천국에서 이어가길 바라본다. 마음을 비우니 친구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친구의 무덤에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고인이 평소 좋아한 소주 한잔을 따라놓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한 잔의 술이 위로가 될 순 없지만`죽음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야. 잘 가게 친구. 다음 세계에서 꼭 만나세.` 속으로 되뇌며 고개를 숙인다. 생명의 마지막 종착점이자 새로운 출발지인 이곳에 친구만 남겨두고 발길을 돌린다.

비가 내린다. `인생은 굵고 짧게`를 외치던 그 친구가 오늘은 못내 그립다. 나도 이제 늙긴 늙었나 보다. 없던 눈물도 생겼으니 말이다. 내가 병마와 싸울 때 누구보다도 먼저 걱정해 주었던 친구. 다가오는 제삿날엔 친구가 아꼈던 술 한 병 사 들고 찾아가 지난날을 추억하며 회포를 풀리라.

빗방울이 굵어진다. 떠난 영혼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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