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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주먹으로 약자 지키는 영웅이죠”

연합뉴스
등록일 2015-05-12 02:01 게재일 2015-05-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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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MBC `여자를 울려`서 열혈 아줌마 열연
알다시피 요즘 지구는 어벤져스 군단이 지킨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 바빠서 학생들을 지켜줄 시간은 없다. 학생들은 그저 `일진`에게 자신이 찍히지 않기만을 바라며 몸을 사린다.

이때 국자를 들고 `짜잔~`하고 나타난 히어로가 있으니 학교 앞 밥집 아줌마 정덕인이다.

전직 강력계 형사로 싸움에 이골이 난 이 아줌마는 주먹도 잘 쓰지만, 칼질도 잘한다. 큼지막한 중국식 칼을 들고 각종 재료를 능숙하게 다듬고, `불쇼`를 하면서 조리를 하고, 두 개의 커다란 솥을 국자로 휘휘 저어가며 단품이지만 매일매일 다른 메뉴를 내놓는다.

그러면서 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느라 허구한 날 주먹다짐으로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주린 배도 채워주고 일진으로부터 보호도 해주는 이 아줌마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는 진정한 히어로다.

“정말 좋은 캐릭터예요. 여자 홍길동이죠. 그동안은 제가 작품할 때마다 주변에서 열 명 중 한 명은 캐릭터를 마음에 안 들어 했는데 이번에는 열이면 열 다 좋아해 줍니다. 최고의 캐릭터를 만난 것 같아요.”

MBC TV 주말극 `여자를 울려`의 주인공 정덕인을 맡아 `여자 홍길동`이 된 배우 김정은(40)을 최근 경기도 고양시 일산 MBC제작센터에서 만났다.

지난달 18일 15%로 출발한 드라마는 한 달 만에 시청률 20%를 위협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매회 이어지는 정덕인의 화끈한 액션과 정성스러운 밥상 차림, 여기에 아들을 잃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의 기구한 사연이 어우러지며 폭넓은 시청층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처음으로 액션도 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는데 시청자가 외면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남자 같은 투박하고 센 액션을 소화하느라 극중 김정은은 늘 `언제든지 싸움에 편한` 펑퍼짐하고 편한 옷차림이다. 머리도 대충 묶거나 양 갈래로 땋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렇게 멋을 안 낸 역할은 처음이에요. 핸드볼 선수로 나온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때도 깔끔하긴 했어요.(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싸움도 싸움인데 학교 앞 작은 밥집 아줌마라 꾸밀 게 없는 거예요. 저라고 왜 예쁘게 나오고 싶지 않았겠어요. 처음에는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편한 복장으로 연기하니까 지금은 이게 너무 편해요.(웃음) 제가 평소엔 손톱도 잘 꾸미는데 이번에는 손톱도 다 바짝 잘랐고, 신고 다니는 운동화는 시커멓게 칠했어요. 이제는 스타일리스트가 단정하게 다려진 옷을 가져오면 안된다고 퇴짜를 놓을 지경입니다.”

장사하기도 바쁠 텐데 정덕인은 오지랖이 넓어서 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개입한다.

여자지만 공중을 날아올라 발차기를 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정덕인은 웬만한 남자 저리가라다. 그런데 드라마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정덕인의 전혀 다른 모습도 배치해놓았다. 이기적인 데다 바람까지 난 남편 앞에서는 모든 것을 감내하고, 생활능력 바닥인 시댁 식구들을 묵묵히 먹여살리는 모습은 인내하는 여인상의 전형이다.

여기에 더해 정덕인은 손맛이 좋은 밥집 아줌마다. 액션에는 대역이 있지만 그의 요리 장면에는 대역이 없다. 칼질도, 조리하는 것도 다 그가 직접 한다.

“소유진을 `이용`해서 남편인 백종원 셰프님을 우리 드라마의 요리 고문으로 모셨어요.(웃음) 백 셰프님이 매회 메뉴를 정해주시고 촬영 전에는 저를 교육시키세요. 제철 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선보이시면 제가 그걸 배워서 촬영장에서 실제로 만들어요. 극중 나오는 중국식 칼도 제게 선물하셨는데 칼은 그냥 선물로 주면 칼부림 난다는 말이 있어서 제가 아주 적은 돈을 주고 그 칼을 샀죠. 우리 드라마에서는 음식을 대충 하지 않고 제대로 만들어서 나눠 먹어요. 돈가스, 전, 수제비 다 제대로 만들어 나눠먹었죠.”

정덕인은 손이 크다. 한창 배고픈 남학생들이 더 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고기반찬이든 뭐든 덤으로 준다. 도무지 이문이 남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정성스레 차린 밥을 먹는 학생들은 몸은 물론 마음의 허기도 채운다.

“정말 새롭게 느껴보는 감정이에요.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하고 그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꽉 찬 것 같아요. 이런 게 정말 엄마의 마음이구나 싶어요. 애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고, 정성스러운 밥 한끼로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김정은은 “정덕인은 아픔이 많은 인물이지만, 계속 아프다고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밥을 짓고, 필요하면 주먹도 쓰면서 약자들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정덕인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최대한 씩씩하고 재미있게 하려고요. 판타지일지라도 드라마가 희망을 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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