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짐을 꾸려 집으로 가야하는데 온천지가 눈밭이라 눈에 갇혔다. 빈 박스를 구해 간신히 짐은 꾸렸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길이 미끄러워서 택배는 아예 엄두를 못 내고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것이 이삿짐센터였다. 짐이란 처음에는 한두 개에서 이것저것 모으다보면 금방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대개 이삿짐을 쌀 때 버리려 하다가 언젠가 한 번은 쓰겠지 하며 도로 짐을 꾸린다. 여러 군데 연락을 했다가 마침 한 이삿짐센터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길이라 겨우 승낙을 얻었지만 문제는 비용이었다. 평소 같으면 얼토당토않은 가격이었으나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딸아이와 둘이서 기차로 먼저 내려왔다. 이삿짐은 약속시간을 1시간 반이나 넘기고 도착했다. 기다리는 나보다 미끄러운 초행길을 찾아 왔을 운전기사가 훨씬 더 가슴 졸였을 게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온 가족이 동원되어 짐을 날랐다. 운전기사가 짐을 내려놓고 대구까지 또 가야하니 내 마음이 덩달아 바빴다.
수고비를 드리고 짐이 다 내려졌는지 확인을 하는데 시커멓고 커다란 체인 꾸러미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 너무 가벼우면 궂은 날에는 헛바퀴가 돌거나 미끄러지기 십상이라 적당한 짐은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에서 균형과 힘을 실어준단다. 그때까지 짐은 고통과 동의어로 생각해 무조건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것을 네 것에 실어 떠 넘겨 버려야 홀가분해지리라 여겼다.
시어머니가 팽팽하던 정신줄을 놓자 느슨해진 실타래가 꼬이고 엉켜 버려 어린애가 되셨다. 곁에서 수족이 되어 보살펴 드려야 하는데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어머니의 뜻을 잘 헤아리고 끔찍이 여기는 신랑이 손을 들었다. 사실 아들이 할 일은 의외로 적고 온전히 내 차지였다. 자식이 아홉이나 되는데 왜 하필 막내며느리인 내가 감당해야 하는지 속을 끓였다. 아침마다 마음을 다잡고 각오를 하지만 문만 열면 악취에 숨이 멎고 현기증이 일며 속이 울렁거렸다. 기저귀를 열면 어머니는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더듬어 여자로 되돌아오시는 듯 이불 귀퉁이를 아랫도리로 끌어당기셨다. 때로는 아이가 된 어머니가 가엾어서 밝게 인사를 나누고 죽을 입에 넣어 드리면 한 그릇을 뚝딱 비우셨다. 비록 나에게 말씀은 하실 수 없지만 마음이 편안해 식욕도 돌아오는 듯했다.
어머니는 드시는 양보다 배설하는 양이 훨씬 많았다.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시며 삶의 애착도 조금씩 옅어졌다. 어머니는 아홉이나 되는 자식을 건사하시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잊고 사셨다. 농사일은 많고 식구들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아 당신을 위한 일은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내 어머니 이전에 꽃 피고 바람이 불면 가슴 설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던 여자이셨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어머니께 여쭈어 보거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며칠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쪽빛 한복에 색조 화장까지 하시고 꿈에 나타나셨다. 깨끗한 벽지에 윤기 나는 대리석으로 마감한 거실에 앉아 미소를 지으셨다. 평소 어머니는 몸단장 하시는 걸 좋아하셨다. 때로는 좀 까다롭게 옷감의 질과 색상과 디자인을 고르셨다. 세상사 다 내려놓으시니 마음이 홀가분해져 행복한 모습을 내게 보여 주셨나보다.
어머니는 짐이 아니라 내 반려자와 손주들을 주신 뿌리이며 내가 올곧은 어른이 되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짐도 때로는 비바람에 끄떡없이 나를 지켜주는 보루가 되어 언덕을 오르고 나면 내리막길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