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재방송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폭죽을 터뜨리듯 피어나던 봄꽃에 놀라는가 싶었는데 세상은 어느새 연두 빛이 가득하다. 새 달력을 거는 일도, 그 첫 장을 넘기는 일도 새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성큼 지나버린 시간에 놀라며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다시 한 번 마음을 정비하는 것도 잠시, 이 한 해도 금방 다가고 말리라 예감한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누군가는 가까이 혹은 멀리로 떠나간다. 그때마다 처음인 듯 가슴이 써늘하지만, 이 역시 가끔씩은 마주치게 되는 일이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감기도 된통 앓게 된다. 사정없이 콧물을 훌쩍이며, 체면을 구기는 일도 잊을 만하면 꼭 한 번씩 찾아온다. 뻔히 아는 것에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 분하긴 해도, 감기 역시 그렇게 나를 곯려 먹는 일에 익숙한 듯하다. 언감생심 도전과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어제와 같은 이 고요는 안녕이며 평화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안 해 본 일은 피하고 싶거나, 미룰 대로 미룰 만큼 성가시고 두렵다. 그러나 반짝이는 저 한 때, 안 해본 일은 살아있음의 뜨거운 확인이며 내 세계를 바꾸는 중요한 기록이 되기도 했다.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은 놀랍고 두렵기도 하다. 게으른 시간과 얕은 정신이 독자들께 실망이나 폐를 끼칠까 걱정된다. 그 조심스러움에 기꺼이 마음을 맡기기로 한다. 두 달 전 신입생들을 만나며 혹여 소홀했던 일상을 반성한다. 중간고사를 끝낸 그들이 일찍 핀 보랏빛 꽃향기를 흩으며 지나간다.
/윤은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