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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4-07 02:01 게재일 2015-04-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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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평생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며 시를 쓰신 시인의 치열한 시대정신이 잘 나타난 시다. 오지 말라고 막아도 오는 것이 자연의 순환이듯이 오랜 억압과 굴레에 갇힌 민중들에게 기어이 자유와 해방의 민주주의는 오고만다는 신념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더디지만 기어이 다가오는 따스한 봄빛처럼 이 땅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피 흘리며 더디게 더디게 온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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