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부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평생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며 시를 쓰신 시인의 치열한 시대정신이 잘 나타난 시다. 오지 말라고 막아도 오는 것이 자연의 순환이듯이 오랜 억압과 굴레에 갇힌 민중들에게 기어이 자유와 해방의 민주주의는 오고만다는 신념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더디지만 기어이 다가오는 따스한 봄빛처럼 이 땅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피 흘리며 더디게 더디게 온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