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 산
영산홍이었다가
까치밥이었다가
일 년 동안 바라만 보다 일 년 만에 딱 한 번 맞잡고
놓아버린 손이었다가
손과 손 사이를 빠져나간 황혼이었다가
한 숟가락 남은 밥그릇처럼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리움이었다가
약속한 사람과 턱없이 일찍 헤어져 오도 가도 못한 채
갇혀 있는 마포구 망원2동의 신호등이었다가
신호등 없이 걸어가는 낮달이었다가
삶이란 끝내 닿을 수 없는 실재들의 연속이 아닐까. 우리 살아가는 동안 실상은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에게 와 닿지 않아서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실존적 가치를 가지고 존재한다. 서로 관련되는 수많은 사물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인식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안타까움과 그리움과 허망감이 그들 사이에 간절히 흐를 뿐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