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국
늙은 어둠이 수천 길 제 몸속의 벼랑에서 몸을 던지거나
햇어둠이 옻처럼 검은 피칠을 하고 태어나는 걸 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들과 냇가에서 서로 몸을 씻어주기도 했다
(…)
이곳에서는 어둠을 옷처럼 입고 다녔으므로
나도 나를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밤마다 어둠이 더운 고기를 삼키듯 나를 삼키면
그 큰 짐승 안에서 캄캄한 무지를 꿈꾸거나
내 속에 차오르는 어둠으로
나는 때로 반딧불이처럼 깜박거리며
가라피를 날아다니고는 했다
시인의 호방하고 멋진 상상력을 읽을 수 있다. 어두운 산중에서 어둠과 혼연일체가 된 시인은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 장자의 꿈을 연상케 하기도 하는 시로서 도가적 발상이 바탕에 흐른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연회귀와 생명순환의 시인정신이 잘 구현된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