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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배웅하러 무심코 나섰다가 봄 기지개에`화들짝`

주헌석기자
등록일 2015-02-13 02:01 게재일 2015-02-1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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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44㎞ 도보여행
▲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세 번째 길인 `심미골 단풍길`로 접어드는 울진군 서면 쌍전리 덕거리마을 산길데크.

조금씩 봄이 오는 소리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새싹들이 돋는 푸근함도 느껴질 만큼 제법 봄이 다 오는 것 같다.

동해안 청정지역 울진은 `등허리 긁어 손 안 닿는 곳`이란 표현 만큼 산세가 높고 험하며 골이 깊은 오지 중의 오지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청정지역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새봄이 오는 길목, 울진으로 도보길을 떠나보자.

이 중 자연의 숲길을 체험하는 낙동정맥 트레일 구간은 풍부하고 수려한 산림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을 연결하는 숲길들이 이어져 봄의 향기가 가득할 것이다.

사람 때 안묻은 청정한 오지

찾는 이 아직 많지 않아 호젓

봉황의 터 탐방길 등 4개 구간

곳곳 사연 품은 마을과 산야

삶과 버무려진 숲길 걷다보면

겨울잠에서 깬 봄 어느새 곁에

경북도청에서는 지난 2012년, 낙동정맥 트레일을 개발해 일반에게 공개했다.

기존의 낙동정맥 마루금과 낙동강 물길을 따르는 강변길을 선인들의 발자취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탐방로로 재구성해 이은 것이다.

이 중 울진구간은 아직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호젓함 속에 순수한 자연과 대면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겪을 수 있는 곤란함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험과 요령이 필요하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은 봉화군 승부역 건너 송리재 초입에서 시작해 산판촌과 화전촌인 전내마을을 지나 진조산을 끼고 돌아 산중의 선비마을인 대봉마을을 거쳐 쌍전리 덕거리마을과 통고산휴양림을 지나 봉화군 소천면과 경계인 남회룡과 영양군 수비마을을 거쳐 울진군 온정 조금마을로 이어지는 44Km의 오지가 펼치는 `순백의 속살 길`이다.

`금강송숲길` `봉황의터 탐방길` `심미골단풍길``수구당탐방길`의 네 구간을 품고 있다.

이중 1, 2구간이 끝날 때까지는 차가 다니는 도로와 동떨어진 채 걸어야 한다. 적절한 체력과 시간 안배는 물론이고, 탈출로까지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무리가 없다.

전내마을을 지나 폐광터를 거쳐 넓재를 넘어 진조산을 끼고 돌아 깨밭골과 대봉마을에 이르는 길 옆에는 금강송과 굴참나무와 자작나무가 제 만의 빛깔과 소리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제강점기, 넓재 부근에는 중금속광산이 성업했다.

넓재 너머 깨밭골과 대봉마을, 덕거리 사람들은 이 길을 넘나들며 광부들에게 옥수수, 메밀전 등 먹거리를 팔아 가계에 보탰다.

온 겨울 내내 순백의 껍질로 수 천 년 제자리를 지켜 온 자작나무는 그 모습만으로도 오롯이 사랑이다.

어린아이 엉덩이 살처럼 부드러운 자작나무 피부는 연인들이 꿈꾸는 연정처럼 빛나고 매끄럽다.

자작나무 잎사귀 새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햇살은 눈부시다. 자작나무 잎사귀가 일구는 바람을 맞으며 연필 금처럼 이어진 길을 걷는 일은 가히 천상에서 맛보는 희열이다.

깨밭골을 지나 만나는 대봉마을은 산중마을에서는 좀체 만나기 힘든 `글하는 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대봉전(大鳳田)이다. 진조산이 펼친 마을이다.

▲ 봉황의 터 탐방길
▲ 봉황의 터 탐방길

□전내마을서 대봉마을까지

60~70년전까지만해도 대봉마을에는 서당이 있었다. 봉암 남봉호 선생이 훈장을 맡았다.

진조산이 가꾼 깨밭골, 덕거리, 대봉마을 학동들이 이 곳을 통해 세상을 깨쳤다.

진조산을 중심으로 언저리에는 대봉마을을 비롯 깨밭골(荏田谷), 진전(眞田), 대우치(大牛峠), 불근이(佛近), 너다리골, 복상터, 용소목이, 맹산터(孟山基), 심미골(深美谷) 덕거리(德巨里)마을이 제 마다 한 골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이 마을을 가꾼 봉암(鳳菴) 남봉호 선생은 대봉마을의 풍광을 `팔경(八景)`으로 호명했다.

왜 우리 선조들은 풍광 좋은 곳을 유독 팔경으로 부르는 것일까? 왜 칠경(七景)이나 구경(九景)이면 안되는가.

우리 민족은 예부터 여덟 팔(八)자를 좋아한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팔자(八字)를 택해 자연과 산수를 세계관으로 끌어들였다.

박민일 교수(강원대)는 논문 `강원도 팔경 방(攷)`에서 현존하는 전국의 팔경을 98곳 784경으로 조사했다.

울진에는 송강 정철이 평생을 찬탄한 관동팔경 중 망양정과 월송정 두 곳을 품고 있다.

대봉마을의 팔경은 봉암대(鳳菴臺), 탁영담(濯纓潭), 세족반(洗足磐), 은폭포(銀瀑布), 병치잠(屛峙岑), 앵소령(鶯巢嶺), 휴게정(休憩亭), 차강산(此江山)이다.

대봉마을을 찾은 풍수사가들은 최고의 명당인 `군조조봉형(群鳥朝奉形)`으로 해석한다. `뭇 새들이 봉황을 향해서 머리를 숙여 절을 하는` 형국이다.

`독미산`에는 `천고사(天告祀)`의식이 전해온다. 하늘에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과거에는 매년 정월에 날을 잡아 제를 올렸으나 최근에는 삼년에 한번씩 올린다.

사람들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초입에 수구당이 자리잡고 있다.

대봉마을을 지나 덕거리마을에 닿으면`한국의 그랜드캐년`인 불영사계곡을 구절양장처럼 잇는 36호국도를 만난다. 구절양장 36호 국도는 2016년에 마무리되는 새 36호국도가 개통되면 전국 최고의 생태문화관광도로로 탈바꿈한다.

울진군은 또 하나의 생태관광 자원 하나를 보태게 되는 셈이다.

▲ 심미골 단풍길
▲ 심미골 단풍길

□세 번째 심미골단풍길

광천(光川)을 건너 통고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의 세 번째 길인`심미골단풍길`로 들어선다.

심미골단풍길은 봉화군 소천면과 맞닿는 남회룡 주막거리로 이어지는 7.9Km의 산중길이다.

울진군은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을 조성하면서 많은 고민을 가졌다.

길의 본래 원형질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본래 길을 되살리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산림청의 권고를 받아들여 마을과 연접하도록 일부 구간에 데크를 설치하고 작은 내(川)를 건너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자연에 삶을 반죽처럼 버무려 인간이 자연에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했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두 번째 길이 끝나고 세 번째 길이 만나는 곳인 덕거리마을에 오면 비로소`점방`을 만난다.

덕거리에는 길 위의 도반들이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펜션도 한 채 자리잡고 있다. 울진군이 산촌생태마을 조성을 위해 건립한 산촌마을 펜션(054-783-9055)이 그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한다.

산중마을 펜션이 자리가 꽉 차면 바로 인근에 위치한 통고산 휴양림을 이용할 수 있다.

통고산 휴양림은 수 천년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자연이 빚은 화강암 군락과 크고 작은 폭포, 사계절 연록과 초록, 단풍, 설경을 연출하는 갖은 활엽수 숲에 싸여 고즈늑하게 앉아 있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의 마지막 길은`수구탐방길`로 이름 붙여진 영양군과 울진군의 경계인 `윗삼승령`에서 온정면 조금리의 `원수목재`로 이어지는 13.5Km구간이다.

온정면은 국내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백암온천과 신선계곡을 낀 온천마을이다.

특히 신선계곡은 크고 작은 200여개의 폭포와 화강암의 기암괴석이 빚은 소(沼)와 이무기와 용의 설화가 가득 찬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울진/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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