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호 쇠제비갈매기 형제의 `가상 편지`
낙동강 하구, 4대강 사업으로 성한 모래톱 한곳도 없어
안동호 작은 모래섬에 새 둥지튼 `쇠제비 갈매기 가족들`
고향땅 밟을 날 손꼽아 기다리며 매년 4월 다시 돌아와
“삐삐빅, 삐삐빅”
여러분, 저희들을 잘 모르시죠? 저희는 올해 안동호의 한 모래섬에서 태어난 이제 석 달배기 쇠제비갈매기 형제랍니다.
원래 저희들은 호주에서 한국을 찾아와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 하구 을숙도 모래밭에 둥지를 틀고 살았지만 사람들이 갑자기 강바닥을 낮춘다면서 중장비를 동원해 온통 모래밭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급히 이사를 오게 되었답니다. 친척들과 이웃사촌들이 오랫동안 살던 정든 을숙도를 떠나게 된 엄마는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낙동강 700리를 거슬러 올라 오셨지만 강 전체 단 한군데도 모래밭이 성한 곳이 없고 풀만 무성한 곳 뿐이었답니다.
어느날 모래밭을 찾지 못해 헤매던 엄마는 안동호 한가운데서 자그마한 모래섬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이제는 매년 봄마다 이웃들도 함께 이곳을 찾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새 보금자리로 삼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 섬은 대부분 물속에 잠겨 있는데 매년 우리가 도착할 때쯤인 4월이면 물 밖으로 얼굴을 쏙 내밀었다가 동생들이 태어나고 함께 남쪽나라 호주로 떠날 때인 8~9월이면 어김없이 물속으로 사라지는 섬이죠. 모래도 곱고 뽀송뽀송하고요. 참 신기하죠? 안동호 이어도라고 해야 할까 봐요.
우리의 고향인 낙동강 하구에서 벌어진 악몽 같은 사연은 이렇습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낙동강 하구에는 원래 깨끗한 모래밭이 참 많았답니다. 옛날에도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하구의 모래를 수시로 퍼 가면서 우리 둥지가 다부서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한해 여름 장마철이 지나면 모래밭이 다시 옛 그대로 회복되곤 했답니다. 파헤쳐진 모래밭이지만 그래도 그땐 군데군데 둥지를 틀 곳이 있어서 서로 위로하며 살 수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인가 뭔가를 한다면서 강 전체의 모래를 1년 내내 마구 퍼낸 다음부터는 성한 모래밭이 한군데도 없게 되었답니다. 여름철 홍수가 지면 다시 모래가 쌓여 다음해 봄엔 모래밭이 생겨 날거라고 다들 기대하기도 했으나 원하던 모래밭을 영영 볼 수가 없었답니다. 이듬해 새봄이 되어도 그다음해가 되어도 모래밭이 나타나기는커녕 큰 트럭들만 우르릉 거리면서 강바닥을 끊임없이 줄지어 드나들기만 했지요.
그래도 고향 등지기를 무척 싫어하는 저희 이웃 친지들은 강바닥 한켠에서 얼마 되지 않는 모래톱을 찾아 옹기종기 둥지를 틀기도 했답니다. 봄은 깊어만 가고 알 낳기가 다급해져 온갖 위험을 따질 상황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장마철에 접어든 어느날 억수같이 비가 내리면서 낮아진 강바닥 모래톱으로 금방 강물이 차오르고 모두 불어난 물에 잠기고 말았답니다. 장맛비 황톳물은 알과 새끼들을 죄다 삼켜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요. 청천벽력 같은 광경에 모두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그저 벌벌 떨기만 했다고 합니다. 놀란 가슴을 안고 저희 부모님은 새찬 날개짓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고 부랴부랴 보금자리를 떠났답니다.
거센 빗줄기가 그치고 강물이 잠잠했을 땐 강어귀 곳곳에서 새끼 잃은 엄마들의 통곡이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우리들에게 자세하게 들려주던 고향 을숙도에서의 악몽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제 저희는 고향에 다시 갈 수 있기를 기다리면서 안동호에서 살기로 했답니다. 지금 먼 남쪽나라 호주에서 겨울을 나고 내년 4월 새봄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예요. 지금 모래섬은 호수 물이 불어나면서 안동호 속으로 가라앉아 있지만 내년 봄이면 틀림없이 깨끗하게 씻겨 새하얗게 변한 섬이 다시 떠오를 테니까요.
엄마는 오늘도 우릴 않혀놓고 옛 이야기를 한답니다. 낙동강 하구에서 대를 이어 살아 온 우리 가족들 이야기지요. 나중에라도 옛 고향 모래밭이 다시 되살아나 옹기종기 둥지를 틀고 살아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여러분, 저희 엄마가 악몽을 잊고 다시 고향으로 찾아 갈 수 있을 때는 언제쯤 일까요? 과연 저희 가족들이 옛 고향인 낙동강 하구를 다시 찾을 수가 있을까요?
안동/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