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평론가의 글말은 탄력 스타킹을 당겨 신는 것처럼 팽팽하고, 끊고 싶지 않은 애인과의 통화처럼 미련을 담보한다. 굳이 평론집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편편마다 에세이로 가득하다. 700여 페이지가 넘는 그의 말들은 온전하게 그 자신의 말로서만 읽어도 충분하다. 분석 대상이 되는 작가나 작품을 몰라도 읽기엔 별 문제가 없다. 독자인 내게 그는 평론이란 겉옷을 빌려 입은 내면의 철학자로 비친다.
아무 쪽이나 펼쳐도 맘에 드는 구절을 쉽게 만난다. `구체적 일상의 숭고함`에 대해 일관되게 말하는 김훈 작가에 대해 말하는 저 인용문을 나도 모르게 메모한다.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현상뿐이다. 현상만을 말하고 냉혹하리만큼 그 현상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불필요한 주석은 달지 않는 것, 이것이 김훈 작가식 글쓰기 방식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 안에 구체적이고 던적스러운 일상이 들어가고, 그것은 숭고한 밥벌이가 되거나 과장 없는 신념이 된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함부로 말하려 할 때 우리는 진실을 포장하게 되고 양심을 의심 받게 된다. 섣부른 연민, 지나친 환호, 드넓은 오지랖, 김훈의 작품 안에선 이런 것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김훈이라면 저런 정서를 말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 안에 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다가 있고, 다만 거기로 나가 싸우고, 그저 견딜 뿐인 게 삶이지, 애초에 거창한 명분이나 정치적 함의 같은 건 김훈 소설의 주인공에겐 없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 이것이 윤리적 진실에 가깝다고 김훈을 해석해주는 신형철의 말글. 함부로 연민하거나 멋대로 재단하지 않을 것, 이것이 우리가 건너야 할 말의 강물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