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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듯 막혔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7-24 02:01 게재일 2014-07-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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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이 버겁다. 나는 딸을 신뢰한다. 이 양가감정은 오랫동안 내가 딸에게 느껴온 감출 수 없는 진실이다. 제 생일을 맞아 아들녀석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 늦은 밤에 도착한 녀석은 저녁 먹다가 찌개국물이 튀었다며 셔츠를 빨아줬으면 했다. 여기서 엄마로서 금세 행동 개시를 했으면 좋았을 걸, 거짓말 보태 밤새워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과제가 밀려 있던 나는 맘만 급했다.

마침 소파에서 딸이 빈둥거리기에 `동생 셔츠 니가 좀 빨아줄래? 더 늦으면 얼룩 안 진다.` 이렇게 말했다. 한데 딸아이가 발끈한다. `스무 살인데 지 셔츠는 지가 빨아 입어야지.`한다. 덧붙여서 `엄만 만날 나보고는 샤워하는 김에 속옷 빨래 정도는 하라고 하면서 왜 아들한테는 그 룰을 적용 안 해?` 한다.

너는 쉬고 있고, 엄마는 지금 바쁘고, 동생은 밤차 타고 오느라 힘들었으니 니가 좀 배려해주면 안 되나, 했더니 나더러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척 하지만 이럴 땐 꽉 막혔단다. 만약 자신이 누나가 아니고 형이었다면 그 셔츠를 자신에게 빨라고 했겠냐는 것이다. 착한 아들은 웃으면서 `누나 말이 맞아요. 제가 샤워하는 김에 빨게요.` 하면서 금세 욕탕으로 사라진다. 아들과 딸이 평소 우애가 깊은 건 아들녀석의 속 깊은 이해가 전제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이야기를 맏딸인 지인들에게 했더니 내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딸아이 입장도 말이 된단다. 은연중에 맏딸에게 거는 엄마로서의 기대감이란 게 무조건적인 배려와 적당한 자기희생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앞가림 면에서는 정신력 강한 딸이 순정한 아들에 비해 훨씬 믿음직스럽다. 그쪽으로 딸을 신뢰하는 내 마음이 딸아이의 반격 콘셉트 앞에서 살짝 흔들린다. 나는 배려에 대해서 말하는데, 딸은 남녀차별이라고 받아들이는 이 아이러니를 뭐라 설명할까. 이건 딸아이가 잘못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바빠도 엄마는 아들 셔츠를 빨아 줄 때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런 뚱딴지같은 결론이라도 내려야 불편한 맘이 가실 것 같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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