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소파에서 딸이 빈둥거리기에 `동생 셔츠 니가 좀 빨아줄래? 더 늦으면 얼룩 안 진다.` 이렇게 말했다. 한데 딸아이가 발끈한다. `스무 살인데 지 셔츠는 지가 빨아 입어야지.`한다. 덧붙여서 `엄만 만날 나보고는 샤워하는 김에 속옷 빨래 정도는 하라고 하면서 왜 아들한테는 그 룰을 적용 안 해?` 한다.
너는 쉬고 있고, 엄마는 지금 바쁘고, 동생은 밤차 타고 오느라 힘들었으니 니가 좀 배려해주면 안 되나, 했더니 나더러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척 하지만 이럴 땐 꽉 막혔단다. 만약 자신이 누나가 아니고 형이었다면 그 셔츠를 자신에게 빨라고 했겠냐는 것이다. 착한 아들은 웃으면서 `누나 말이 맞아요. 제가 샤워하는 김에 빨게요.` 하면서 금세 욕탕으로 사라진다. 아들과 딸이 평소 우애가 깊은 건 아들녀석의 속 깊은 이해가 전제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이야기를 맏딸인 지인들에게 했더니 내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딸아이 입장도 말이 된단다. 은연중에 맏딸에게 거는 엄마로서의 기대감이란 게 무조건적인 배려와 적당한 자기희생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앞가림 면에서는 정신력 강한 딸이 순정한 아들에 비해 훨씬 믿음직스럽다. 그쪽으로 딸을 신뢰하는 내 마음이 딸아이의 반격 콘셉트 앞에서 살짝 흔들린다. 나는 배려에 대해서 말하는데, 딸은 남녀차별이라고 받아들이는 이 아이러니를 뭐라 설명할까. 이건 딸아이가 잘못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바빠도 엄마는 아들 셔츠를 빨아 줄 때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런 뚱딴지같은 결론이라도 내려야 불편한 맘이 가실 것 같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