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한다지만 그건 세속적 관점에서의 부러움일 뿐이다. 옳고 그름인 도덕적 문제로 옮겨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직 후보자들 스스로 더 많이 가진 것에 떳떳하지 못하다. 재산 축소 또는 누락 신고를 자처함으로써 그들의 부가 정당하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정당한 방법으로 가진 자가 되었다면 쉬쉬할 이유가 무엔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산다. 많이 가졌다는 건 행복 조건의 일부분은 되겠지만 궁극적 목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숨겨야 할 땐 숨기는 한이 있더라도 많이 가져 봤으면 하고 소원한다. 탐욕 때문이다. 아주 보통의 인간 누구에게나 탐욕은 있다. 하지만 아주 드문 누군가는 그것을 다스린다. 아니 초월한다. 가령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경우는 어떤가. 니어링 부부의 행복 찾기는 자연에서 맞춤하게 살아가기였다.
남편 니어링이 죽은 뒤 헬렌은 회고록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다음과 같이 그들 삶의 방식에 대해 썼다. 자신과 화해할 것,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할 것, 모든 면에서 잡동사니를 치울 것, 날마다 자연을 느낄 것, 힘든 노동을 하고 산책을 할 것, 날마다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살 것, 모든 생명체에게 친절할 것 등등이다.
물질을 그러안고 드높인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마음 부자는 소박하게 비우고, 기꺼이 나누는데 있다. 벌들에겐 그들의 양식이니 꿀도 아껴 먹고,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한 게 미안해 메이플 시럽조차 귀히 먹은 그들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