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조선 초, 격동의 시기 군웅들이 할거했다. 그 중 정치적 리더로서 제 나름의 덕성과 개성을 확보한 이는 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등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위기의식으로 인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방식은 셋이 지닌 덕성이나 개성만큼 달랐다. 극적인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 치열한 권력 투쟁을 했다.
우선 정몽주는 원칙에 입각한 인물이었다. 두 임금을 모시지 못한다는 신념으로 역성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못했다. 끝내 반대 노선을 택했고 죽음으로서 제 정치적 덕성을 실현했다. 이방원은 구체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보다는 권력의지에 무게를 둔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적 덕성은 법과 제도에 충실한 신념에 있다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의리에 바탕을 둔 인간 경영에 무게를 두었다. 마지막으로 정도전은 주자학의 이기론에 바탕을 둔 이론과 현실을 접목한 인물이었다. 이념과 제도를 바탕으로 한 권력 지향적 인물이 정도전이었다.
정치적 자질로만 보면 정도전은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이상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운명이 쏠리는 곳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운명은 이방원 쪽으로 기울었다. 정치가의 덕성은 일반 철학에서 말하는 덕성과는 다르다. 정치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 그것이 정치에서 말하는 덕성이다. 이방원의 힘이란 덕성이 정몽주의 원칙과 정도전의 이상이라는 각각의 덕성을 눌렀다. 결과가 아니라 합리적인 생각만을 그 기준으로 할 때, 사람들은 정도전의 정치 이념에 손을 들어준다. 그리하여 역사의 승리자가 못 된 심적 동반자로서 그의 실천적 의지를 응원하게도 되는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