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연주자들은 약속된 피날레 곡을 신호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즉 탈출 대열에 끼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원들과 작별인사를 하자마자 바이올린 주자이자 리더인 월레스 하틀리는 다시 바이올린을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의 익숙한 선율. 등을 보이고 걸어가는 것도 잠시, 나머지 연주자 셋도 돌아와 그 애잔한 멜로디 `내 주를 가까이` 연주에 동참한다. 위기에 직면해 우왕좌왕하는 승객들의 안타까운 장면을 배경으로, 담대하고도 처연하게 사명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최고의 영화 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내남할 것 없이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의 안정을 전하기 위한 그들의 이타심은 거룩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들의 자발적 희생은 실제 상황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4중주 멤버로 나오지만 실제는 8인의 악사들이었다. 하틀리는 70여 차례나 항해 경험이 있는 여객선 악사였다. 그의 시신이 십여 일만에 발견되었을 때 그의 허리에는 가죽 가방에 담긴 바이올린이 묶여 있었다. 약혼자가 선물했다는 그의 바이올린은 지난해 영국의 한 경매에서 우리 돈 15억원에 낙찰되었다. 타이타닉 관련 단품으로는 최고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비싼 낙찰가에 놀랐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살았을 때의 제 삶을 재상영하는 프로그램이 다음 생애 시작 전에 반드시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곤 한다. 의식하지 못했던 내 실수와 내 약점은 하느님도 너그러이 봐주시겠지만, 의도한 내 악덕과 내 졸렬함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월레스 하틀리의 먼발치에서 당신의 바이올린이야말로 숭고한 것이라고 눈빛이라도 건네 보려면 얼마나 선한 것들을 새겨야 할 것인가. 장맛 빛 하늘만큼이나 맘이 무거워진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