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고 난 뒤 단지 그것이 언어습관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사투리가 그렇듯 윗세대가 그렇게 전수하니 아랫세대도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처음 겪은 내게만 그것이 이상한 것이지 원래 그렇게 적응해온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젯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전국구 친구들을 만났다. 수다 중 `thanks to`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생스투`라고 발음하자 친구들이 마구 웃었다.`땡스투`지 `생스투`가 뭐냐는 것이었다. 어릴 적 도회지 친구들이 `으`와 `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내 심정이 그들 심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영어 발음으로 할 것도 아닌데 나로선 생스투나 땡스투나 그게 그거 같아 보였다.
궁금한 나머지 집으로 돌아온 나는 thanks to를 우리말로 (영어발음이 아닌!) 어떻게 표기하는지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땡스투`나 `생스투`나 그게 그거였다. 그렇다면 단순히 땡스투냐 생스투냐의 발음 차이가 아니라 경상도식 발성법의 미묘한 뉘앙스 때문에 그들이 웃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단상 하나가 퍼뜩 스쳤다. 어릴 적 내게 이상하게만 와 닿았던 발음 건이 그들에겐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게 나로선 이상했듯이,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내 발음이 내겐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역시 이상할 수도 있다는 사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상이 나보다 옳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김살로메(소설가)